스티브 잡스와 기억 속으로 걷기 with 김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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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기억 속으로 걷기 with 김승범




“이상한 놈이어도 괜찮다”
 스티브 잡스와 기억 속으로 걷기 with 김승범


스티브 잡스가 사망하기 직전, 그가 살던 집까지 방문했다가 쫓겨난 일화를 아이처럼 기뻐하며 이야기하던 김승범. 그가 단순히 ‘애플빠’에 그쳤다면,
인터뷰이는 굳이 그가 아니어도 됐다. 애플이 망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가 경험한 잡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김승범 씨는 현재 HXD(Health eXperience Desig n)를 연구하는 ‘클라우드브릿지(Cloudbridge)’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클라우드브릿지는 의료 분야에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디자인을 적용하기 위해 연구하는 곳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전제하는 애플의 철학과 닮아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승범 씨는 인간적 의료와 소통으로 주목받았던 카페형 병원 제너럴닥터 원장이었지만, 또 다른 도전을 위해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스티브 잡스와 삶의 행보마저 닮은 그의 애플 사랑은 과거 병원 직원들이 아예 PC를 쓰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고. 김승범 씨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잡스를 ‘믿고 지켜봤던 친구’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잡스가 그의 손에 쥐여 준 제품을 통해 교감했기 때문이다. 김승범 씨가 애플과 처음 만났던 그 날로 돌아가 스티브 잡스를 회고해 본다.



내가 사랑한 애플

그가 맥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2000년이지만 첫 만남은 그보다 훨씬 전. PC와 맥의 개념조차 모르던 어린이 김승범은 영풍문고 매장 지하에서 매킨토시 컬러클래식을 처음 만난다. 그때 느꼈던 왠지 모를 ‘시원함’은 대학생이 된 그가 PC 대신 맥을 선택하게 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실은 더 큰 이유가 있긴 했다. PC는 너무 못생겼고, 맥은 이 세상 물건이 아닌 듯 아름다웠던 것. “내가 생각한 위치에 파일이 있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걸 보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사용자 경험에 관한 완전히 다른 철학을 느꼈죠.”

김승범 씨가 맥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면 길을 잃어버리는 윈도우와 달리 인간은 실수를 범한다는 것을 가정한 GUI였다고 한다. 처음엔 예쁜 게 좋아서 뭔지도 모르고 써 본 게 완전히 다른 경험을 준 거다. 그는 애플빠가 애플에 감동하는 이유로 ‘변태적 집착’을 어디에서든 느끼게 해준다는 점을 꼽았다. 그 ‘어디’는 소재일 수도 있고, 버튼 하나, 또는 마케팅일 수도 있다.

유난이라며 눈 흘기는 사람들에게 그는 “(테이블과 의자가 붙은 파라솔을 가리키며) 이렇게 적당히 앉을 만한 의자가 있고 이것이 대중에게 보편적이라고 해서, 더 나은 의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비난받을 필요는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완벽을 추구하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스며든 집착이 애플 마니아가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잡스가 죽은 후

김승범 씨가 사랑했던 그 ‘변태적 집착’의 구심점 잡스가 죽으면서 우려는 없었는지 물었다.“실제 잡스 사망 전 몇 년 동안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망할 즈음부터는 그런 걱정이 많이 줄었어요. 시나리오 두 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눈을 반짝이며 그가 설명해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잡스가 한 명의 후계자를 정해 자신의 위치나 권력, 역할을 그대로 넘겨주는 시나리오. 둘째는 이것들을 분산해 팀 구성원에게 각자 나눠주는 것이다.

김승범 씨는 잡스가 남아 있는 팀원들이 같이 일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는 두 번째 시나리오가 실현됐다고 봤고, 안심했다. 현 애플 CEO 팀 쿡의 애플에 대한 이해도가 잡스와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변태 같은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잡스가 없다고 해서 애플이 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이 바뀌었다면 그것은 디자인의 변화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집착이 없어질 때,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하려고 할 때다.



‘잡스 사망 전 그의 집 앞에서 쫓겨난 마지막 동양인’ 타이틀을 얻은 김승범 씨. 사진은 잡스의 집 화단에 있던 사과나무다.



대체 어떤 놈이야?

김승범 씨는 잡스보다 애플을 먼저 알았다. 제품을 만져 본 다음 ‘도대체 어떤 놈이 만든 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도 처음엔 자신이 이해하는 세계, 범위 안에서 보고 싶은 대로 잡스를 봤다.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집착적이고 고집쟁이에 욕심 많은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예상을 뒤엎는 엉뚱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 것이다. 처음 잡스가 아이팟을 공개했을 때 애플 마니아들은 “잡스가 미쳤다”며 망조가 들었다고 했다. 당시 애플 커뮤니티는 폭탄 맞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고, 아이폰이 나왔을 때도 이러한 패턴은 반복됐다.

“겨우 제품 한두 개 만져보고 그 사람을 파악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죠. 사람들이 처음부터 대박이라고 말해주는 혁신도 있지만, 미쳤다고 욕먹는 이상한 혁신도 있거든요.”김승범 씨는 대다수의 그럴듯한 예상을 우습게 뒤집어버리는 잡스를 보면서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기준에 맞춰 환호하거나 돌을 던지기보다 그냥 믿고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잡스는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해냈고 세상은 그로 인해 변했다.



애플의 존재 이유

젊은 시절 잡스가 자신이 만든 새로운 제품을 처음 발표할 때 표정이나 말투에는 “이거 봐, 재미있지? 멋있지? 환호해봐!”라는 느낌이 역력했다. 자신이 구상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동원했고, 결국은 만들어 냈으며, 무엇보다 자기 즐거움이 중요했던 시기다. 다른 사람이 생각지 못했던 걸 만들어내는 것이 잡스의 즐거움이었고, 즐거움이 혁신으로 이어졌다.

그가 일으킨 혁신이 세상을 변화시켰고, 회사는 돈을 버는 흐름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돌아오면서 잡스는 바뀌었다. 김승범 씨 말에 따르면 ‘애플이 왜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기만족에서 ‘애플’이라고 하는 회사로 잡스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입하고 애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지금의 애플은 잡스의 애플이 아닌, 잡스의 정신이 곳곳에 녹아 들어간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는 증거

공교롭게 김승범 씨가 하는 HXD 역시 기존에 없던 일이다. 잡스가 컴퓨터 분야에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실현했다면 김승범 씨는 의료 분야에서 이를 이루려 한다. 깊이 들어가면 질환, 아픔 등의 개념부터 넓게 생각하면 돌봄과 이해, 위로, 공감까지 확장하고 이는 출판물, 공간설계, 서비스플로우 등 모든 것에 관여된다. 경계 자체가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다. 김승범 씨에게는 ‘재미있는’ 일이고 의료계에서는 ‘미친 짓’이었으며,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포괄된다.

“제너럴닥터에서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은 미친 짓을 또 한 번 해보는 거죠. HXD라는 개념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을 넓히려는 거예요. 애플의 철학이랑 비슷할 수도 있어요.”김승범 씨가 단순히 잡스를 따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는 ‘체화’라는 표현을 썼다.

“세상은 보통 다수의 사람이 옳다고 말하는 대로 돌아가잖아요? 근데 그중 한두 명은 더 편한 방법을 생각해요. 주변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그 한두 명은 해본 적도, 용기도 없기 때문에 도전 못 합니다. 할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거든요. 잡스가 그 증거를 줬죠.”김승범 씨는 그가 잡스에게 받은 선물을 자신의 영역에서도 보여주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클라우드브지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사람들 손에 쥐여주고, 또 새로운 걸 만들어서 계속 놀라게 하고 싶어요.”



애플이 망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애플은 어떻게 되겠냐는 우문에 김승범 씨는 답했다.“제가 생각한다 해서 의미 있진 않겠지만(웃음), 저는 애플도 언젠가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애플빠가 애플이 망해야 한다니. 그는 이어서 말했다.“기업도 사회적 생명체잖아요. 생명체의 적정수명은 분명 있어요. 사망의 사이클을 벗어난 세포는 불사의 슈퍼맨 같은 세포가 아니라 암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애플도 언젠간 그 지위를 잃고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언젠진 아무도 모르지만요.”

많은 이가 애플이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으니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듯 몇 십 년은 그 자리를 지킬 것이라 예측하지만, 김승범 씨는 오히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장의 절대적인 지위를 지키기 위해 혁신을 포기하느니 혁신을, 남들이 못할 거라 생각하는 일들을 계속 증명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요.”   

tags 송여진 기자 , 김승범 , 클라우드브릳지 , 제너럴 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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