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되지만 넌 안 돼, 나도 앓고 있을지 모를 관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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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되지만 넌 안 돼, 나도 앓고 있을지 모를 관음증

1. 과거있는 남자, 이예근 편집장의 흔적을 찾아서 2. 나도 앓고 있을지 모를 관음증 3. 삶을 옥죄는 주홍글씨, 잊혀질 권리를 찾아주다 4. '신상털기', 나도 한 번 해볼까?


'C.S.I'나 '위드아웃 어 트레이스'와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보면, 단서나 흔적도 없이 사건이나 실종자들을 갖가지 도구와 많은 전문 인력을 통해서 찾아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네티즌 한 명이 그 역할을 해낸다. 우리는 그들을 우스갯 소리로 '네티즌 수사대'라고 부른다. '네티즌 수사대' 망에 걸리면 우리가 잊고 있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과거 흔적이 모두 되살아난다. 이미 그 상황에 이르면 그 사람의 선택과 권리는 없는 상태. 타인에 의해 내 과거가 낱낱이 밝혀지는 것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진행. 월간 w.e.b. 편집국


Reconstruction of the trace 2
I Know You :  난 되지만 넌 안 돼 시대 흐름 따라 사용한 SNS, 메일을 비롯한 각종 온라인 서비스. 이곳엔 신상 정보는 물론 그날그날 추억을 담은 사진, 글 등 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것이 빠짐없이 타인의 시선에 닿는다면 어떨까? 혹은 타인의 흔적이 내 시선에 닿는다면? 보고 싶은 심리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심리, 관음 세태와 잊혀질 권리에 관해 고민해보자. 

글. 조현아 기자 narb@websmedia.co.kr



나도 앓고 있을지 모를 관음증 # 1.  A양은 좋아하는 배우 C가 있다. 한 독립영화에서 빼어난 외모와 연기력을 자랑하는 C 배우를 보고 반해 현재 톱스타가 되기까지 줄곧 팬으로 지냈다. 그가 출연한 영화는 일단 믿고 본다. 가끔 그가 예능에 출연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챙겨본다.

# 2.  B양도 A양과 같은 C 배우를 좋아한다. 그가 해당 독립영화에서 주연을 맡기 전, 막 영화배우 활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열렬한 팬이고, 그의 집 앞에서 밤을 새운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몸은 힘들지만, 가끔 창 안으로 보이는 그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 엊저녁엔 집 안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자신을 봐줬단 생각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 3.  새로운 영화 개봉을 앞두고 C 배우는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일반인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 것. 인기와 영화 흥행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둘째 치고, 여자친구의 신상이 온라인상에 낱낱이 공개돼 문제였다. 이름, 경력은 물론 평판까지 언급됐다. 그는 여자 친구 신상을 턴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 4.  A양은 이러한 사실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좋아하는 배우가 활동에 지장을 입을 것을 염려했다. 반면 B양은 고소 준비 소식을 접하고 치를 떨었다. 그토록 애정을 쏟은 배우인데, 고마움도 모르고 자기를 고소하다니. B양은 C 배우의 열애설을 보고, 분노한 나머지 그의 여자친구 신상을 마구잡이로 털었고, 이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했다. 사실 C 배우의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사생활도 꿰뚫고 있는 B양이다. 좋아하는데, 무슨 문제인가 싶다.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사항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집단 관음, 신상털기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자리에 앉아서 타인의 정보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신상털기’가 또 하나의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공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도 안전할 수 없는 세상이다. 한 사람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관음까지 이르고, 끝내 신상털기로 이어진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을 훔쳐보려 하는 습성, 관음은 집단 성향으로도 보인다. 작년 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발현한 집단 관음증 사태는 온라인 관음 시대의 문제점을 또 한 번 가시적으로 드러낸 일이었다. 불특정 다수 사람들은 성추행 피해자의 사진은 물론 이름, 경력, 평판까지 파헤치고, 공유했다. 처음 공개한 사람에 대해 당국이 ‘그녀가 아니다’라고 비공식적으로 언급하자 새로 진짜 피해자를 찾아 사진, 이름, 경력, 평판을 알렸다. 피해자의 처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개인의 신상털기를 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공개된 개인정보

지난 10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병헌 의원이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제출받은 '잊혀질 권리의 국내제도 도입 반영 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 191명 중 81%가 잊혀질 권리 입법에 대해 찬성했다. 잊혀질 권리란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각종 개인정보를 삭제 요구할 수 있는 권리. 현재 정보는 개인의 것이나 완벽한 삭제 권한은 기업에 있어 이를 아예 입법화하자는 취지로 제기됐다. 2012년 1월 25일 유럽연합(EU)은 잊혀질 권리를 명문화하는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세계 최초로 확정했고, 국내에서도 입법 필요성이 지속해서 제기되는 시점이다. 타인에게 나의 정보를 알리고 싶지 않은 개인의 마음을 떠나, 특정 개인이 집단 관음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잊혀질 권리는 당연한 요구 사항일 것이다. 기자는 문득 대부분 온라인 서비스에 한 아이디를 공통으로 쓰고 있는 자신의 신변이 걱정됐다. 어쩌면 주민등록번호보다 더욱 많은 내 정보가 공개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포털에 조심스레 해당 아이디를 검색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즐겨 쓰는 SNS는 당연하고, 현재 사용하지 않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부터 언제 작성했는지도 모를 블로그의 글, 대학생 시절 작성한 리포트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심지어 삭제한 글마저 검색 기록에는 남아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특정 교육원을 다닐 때 작성한 이력서가 검색돼 생년월일, 현 거주 주소, 연락처가 그대로 공개됐던 것. 정신이 번쩍 들었다. SNS에 공개한 신상은 차치하더라도 이력서 사항, 집 주소까지는 불특정 다수에게 결코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항이다. 잊혀질 권리가 절실했다.

직접 겪은 일 하나도 떠올랐다. 과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즉시 즉각 연락이 닿는 것이 필요한 직업 특성 상 SNS에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다. 현재는 비공개 상태다. 이유는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지속해서 연락 받으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길진 않은 시간이었지만 올 여름부터 가을까지 두 달 꼴로, 이틀 연달아 문자를 받았다. 시작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휴대전화도 찾아주시고 참 좋은 분이에요'. 기자는 누군가의 휴대전화를 찾아준 적이 없었다. 그러한 적이 없다고, 잘못 연락한 것 같다고 답하니 '전화를 빌려주셨네요. 좋은 분이에요'란 답이 왔다. 무시하고 나서도 이후 '좋은 하루 보내세요'란 안부 문자가 계속 왔다. 처음엔 별 생각 없어 받아도 모른 척 하고 넘겼지만 점점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어느 날,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따지려는 심산으로 받았더니 말은 안 하고 내 목소리를 듣기만 했다. 두려움에 바로 스팸 번호로 등록했다. SNS의 휴대전화 번호도 비공개로 바꿨다. 한동안 진작 조처를 취하지 않은 둔감한 자신을 탓했다. 기분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내 신상을 안다고 실감하니 무서웠다. 연락한 당사자는 큰 문제가 아니라 여겼을 것이다. 신상을 턴 것도 아니고,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공개된 신상을 통해 내게 연락을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나만큼 타인도 생각하자

실상 나도 일반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을 보면 즐겁고, 간직하고 싶다. 그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게 된다면 분명 호기심에 전화 한 번 걸어볼 것이고, 좋아할 테다. 얼마 전 모 가수의 누드 사진이 유출됐을 땐 찾아보진 않았지만 궁금했다. 누군가 공유했다면 죄책감 없이 사진을 봤을 것이다. 타인을 훔쳐보는 것,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고약한 심리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일단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내 사생활이 타인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면 마냥 마음 편할 수 있을까? 모두 함께 사는 사회에서 우린 집단 관음증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 관리하는 법이 시행되기 전에 일단 개개인의 마음가짐부터 고쳐먹자. 윤창중 성폭행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당시 누리꾼들의 피해자 신상털기가 또 하나의 문제가 됐다. 현재도 포털에서 관련 키워드를 입력하면 피해자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나온다. 포털에서 기자의 자주 쓰는 아이디를 검색하니 현재 사는 집주소까지 나왔다.
 

tags 조현아 기자 , 신상털기 , 관음증 , 윤창중 , 잊혀질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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