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4. 소금 같은 남자, 카피라이터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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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4. 소금 같은 남자, 카피라이터 정철

Taste 01. 시장 경제의 빛과 소금, 광고 그리고 카피
Taste 02-1. IDEA: 카피를 반짝이게 하는 아이디어
Taste 02-2. 광고 카피 아이디어 뽑아내는 꿀 TIP!
Taste 03. DESIGN: 카피는 디자인하기 나름이에요
Taste 04. 사람을 살피는 카피라이터, 정철
Taste 05. 일반 소비자들에게 광고 카피는 얼마나 중요할까?

니들이 카피 맛을 알아? [tasty copy]
우리는 제품을, 광고를, 브랜드를 카피로 기억하곤 한다. 백 마디 말보다 정확한 테스트! ‘사나이를 울리는 매운맛!’,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아버님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 ‘부자 되세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이 여섯 가지 카피에서 절반 이상은 브랜드를 쉽게 떠올렸을 터. 세상이 디지털화해도, 디지털 광고 카피는 휘발성이 강하다고 해도, 결국 광고는 사람을 향하기 때문에 카피는 여전히 전통매체를 중심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가 카피를 더욱 강렬하게 하는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살펴보고, 카피라이터를 만나 카피를 탐구하고, 카피에 대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Taste 04.  interview
사람을 살피는 카피라이터, 정철 카피를 쓰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어가니 원로 카피라이터 소리를 듣는다며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비단 나이 탓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광고의 시작과 부흥기와 현재에 그가 있었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많은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붙은 수식어다.
요즘은 카피만큼이나 책을 쓰고 강연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며, 자기 소개를 할 때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라고 말하는 그는 아직도 글을 쓰는 일이 즐겁다.

글·사진. 박서영 기자 sage115@websmedia.co.kr



IM 대행사에 있을 때와 비교해 독립해 작업하는 것은 환경 측면에서도 질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독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가?

정철 카피라이터, 정철 카피 대표(이하 정철) 카피라이터가 대행사에 있다가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금전적 이유다. 대행사도 회사라 아무리 뛰어난 크리에이터도 회사 안에서는 모두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다. 프리랜서로 독립하면 성과가 본인 하기 나름이니까. 또 한 가지는 회사 내에서 직급이 상승하며 실무와 멀어지는 것을 못 견디는 경우다. 카피를 쓰며 직접 현업에서 뛰는 것에 즐거움을 찾는 부류가 있다. 난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어 다른 이들보다 일찍 독립했다. 회사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있었고 신생 업체로 옮겼는데 일 년 정도 지내다 보니 생각과 맞지 않아 회사를 나오게 됐다. 그러던 중 무작정 독립을 택했다. 독립하고 일 년에서 일 년 반 정도 열심히 했더니 일이 많아지더라. 오히려 독립하고 나서 일이 활발해진 케이스다.

IM 대행사에 있을 때보다 독립했을 때 카피라이터로서 더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가?
정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스템 내에서 업계 사람들과 함께했을 때 자신의 능력을 더 크게 발휘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는 운이 좋았다. 프리랜서로 독립해 제일기획, 오리콤 등 여러 대행사와 함께 일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들의 노하우를 하나씩 배울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쌓여 많은 도움이 됐다.  

IM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현업에 머무르며 카피라이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 건가.
정철 100% 내 머리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다. 요컨대 같이 회의하는 도중에 나온다든가, 저녁때 지인과 술 한잔 기울이며 일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힌트를 얻는다. 이런 것들을 잘 채집해 메모하고 다음 날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주위 모든 이가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IM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갖는 데 도움이 됐던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철 책과 술, 이 두 가지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사람으로부터 인사이트를 얻는 것도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 이야기를 듣는 법, 발견하는 방법, 이 모든 것이 책에 나와 있다. 카피라이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다방면의 책을 무차별적으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술은 좋아하기도 하고, 일하면서 많은 사람과 술자리를 가지는 것도 있다. 술자리를 통해 사람들이 많은 영감을 주는데, 광고라는 게 사람을 상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인지라 술자리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 많은 도움이 된다(웃음).

IM 카피를 도출하기 어려울 땐 어떻게 하는가?
정철 가장 좋은 방법은 떠나는 것이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는 작업실 문을 잠그고 나가서 논다. 머리가 뻑뻑한 건 생각에 방해물이 많다는 뜻이다. 생각을 털고 하루 이틀 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작업하기에도 수월하다.

IM 아이디어를 만드는 나름의 스킬이 있을 것 같다.
정철 카피 의뢰를 받아 대행사에 가면 광고주가 A4용지 두 장 정도 되는 광고 브리핑 페이퍼를 준다. 이것을 보며 제품 특징이 무엇인지, 경쟁사는 어디고 소비자 반응은 어떠한지, 어떻게 콘셉트를 잡았는지 등을 오리엔테이션 받는다. 그때 머릿속에 연상되는 것들을 종이에 적어둔다. 그러다 보면 카피 비슷한 문장도 나오고 단어들도 나온다.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와 이를 다시 한 번 훑어보며 처음 떠올렸던 것들을 찬찬히 생각하는데, 대부분 그 안에서 A안이 나온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처음으로 걸리는 이미지가 소비자에게도 통할 확률이 높다. 그 후, B안, C안을 만든다. 이게 가끔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내가 이전에 써놨던 카피들을 다시 한 번 살핀다. 하나의 광고를 온에어하기 위해 많은 카피를 쓰고 이 중 한 가지 카피만 광고에 사용하는데, 이때 남겨진 카피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이게 5년, 10년 쌓이면 엄청난 양이 된다. 지난 카피를 다시 한 번 들춰보면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IM 정철만의 카피 철학이 있을 것 같다.
정철 ‘사람’이다. 광고도 책을 저술하는 것도 사람을 향해 말하는 것이다. 내가 쓰는 카피와 글이 어려운 세상에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고 용기를 전하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좋겠다.

IM 지금까지 작업한 카피 중 가장 어려웠던 카피는 무엇이고, 쉽게 작업했던 카피는 무엇인가.
정철 재작년에 부산 사상구에 내려가 문재인 후보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일 년간 했다. 부산에서 100일 정도 국회의원 선거를 도왔고, 그 후 약 200일 동안 서울에서 대선을 도왔다. 부산 선거 때 사용한 카피가 ‘바람이 다르다’라는 카피였는데, 이 슬로건은 부산으로 내려가는 차안에서 급작스레 떠올린 카피다. 다행히 모두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바로 손쉽게 카피로 사용한 케이스다. 사상구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후, 서울로 올라와 대선을 준비하며 사용한 카피가 ‘사람이 먼저다’였는데 이 카피는 굉장히 어렵게 결정된 케이스였다. 의견도 많았고, 이를 집약해 통일된 메시지를 도출하는 부분이 꽤나 까다로웠다. 이 두 슬로건이 내 인생에 가장 의미 있었던 카피 두 줄 이었고, 광고쟁이로서 뜻깊었던 시간이었다.

IM 현재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철 7월에 새 책을 준비하고 있어 현재 마무리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책 제목이 『1』이다. 1은 한 글자라는 뜻인데, 한 글자로 된 단어 250개를 뽑아 글로 엮은 책이라 그렇게 지었다. 그 외에는 선거철이라 지방 선거 쪽 카피를 쓰는 일을 하고 있다.

IM 책도 쓰고, 카피도 쓰는 다재다능한 카피라이터다. 사실 책과 카피는 ‘글’이라는 공통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두 요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철 카피라이터는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사람이다. 삼양라면 이야기도, 하이트 맥주 이야기도 대신해준다. 남의 이야기를 20년 가까이하다 보니 한 5년 전부터는 내 얘기를 하고 싶더라. 내 생각을 날것으로 사람들에게 던지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궁금했고. 그래서 책을 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카피라이터 정철이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 책을 보고 카피라이터의 꿈을 키우는 젊은 친구들이 꽤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내가 쓰는 책은 에세이지 카피가 아니다. 다시 말해 카피라이터가 쓰는 글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카피는 철저히 마케팅의 한 수단인 광고의 한 요소다. 카피는 볼트나 너트같이 마케팅의 큰 방향에 따라 부분적으로 제품 판매나 이미지 등을 위해 기능한다. 반면 에세이는 그 사람을 나타내는 글이다. 작가의 인생이나 철학이 그 안에 녹아있다.

IM 마지막 질문이다. 카피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철 ‘공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카피는 제품을 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설득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고무장갑을 광고한다면, 전국 아줌마 50만 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웅변하는 것이 아닌, 한 주부를 만나 커피 한 잔 놓고 마주 앉아 자근자근 설득하는 느낌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설득 기술이 뛰어난 카피를 쓰는 사람이 좋은 카피라이터다. 하지만 여기서 설득은 하나의 스킬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설득을 위해 우선돼야 하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 사람들은 광고를 보면 벽부터 쌓는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벽을 허무는 작업이 우선되지 않으면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먼저 해줘야 한다. 공감해야 설득도 하니까. 어떻게 소비자와 카피라이터 사이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꺼낼지 많이 고민해야 한다.

정철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30년 가까이 광고 카피를 써오고 있으며 지금은 ‘정철카피’ 대표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내 머리 사용법』, 『불법사전』, 『머리를 9하라』, 『인생의 목적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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