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한국 디자인의 선진화를 바란다면 한국디자인진흥원 ‘진흥’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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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한국 디자인의 선진화를 바란다면 한국디자인진흥원 ‘진흥’을 버려라

한국디자인진흥원은 “한국 디자인의 선진화를 이끄는 글로벌 디자인 한류의 중심”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선진화를 이끈다’는 기관이 이름부터 구시대적 발상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에서 디자인은 더 이상 ‘진흥’의 대상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디자인진흥원도 변해야 한다.

글. 박희운 브릭스리퍼블릭 대표
현)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뉴미디어 부문 추천작가, 한국고용노동부 심의위원, 디지털기업협회 상임고문
전) (주)포트폴리오 대표이사, 제일기획 뉴미디어 디랙터







미래디자인융합센터
건설에 총 280억 원이 들었지만 그 목적은 모호하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 디자인계가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발전을 이어가도록 산하에 ‘한국디자인진흥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기관을 운영한다. 그러나 한국디자인진흥원은 기관명대로 디자인 산업의 ‘진흥’은 커녕 자신들의 존재목적에 대한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진흥원 주관의 국가 지원사업에 수차례 참여한 결과, 대부분의 사업은 무의미하고 형식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디자인 업계에 20년간 몸담으면서 같은 디자인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진흥원이라는 조직을 하나의 허상처럼 느껴왔는데, 실무 디자이너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사업내역을 얼핏 보면 오랜 기간 디자인 진흥정책과 디자인 산업의 발전을 위해 벌인 일들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 보면 대부분 그럴듯한 포장으로 그치거나, 그 실체를 알기 힘들다. 작년 한 해 동안 진흥원이 진행한 사업은 무려 마흔 개가 넘는다. 하나의 사업을 한 부서에서 담당하더라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사정이다. 게다가 추진하는 사업의 수는 매년 증가하는 반면, 중단하는 사업은 거의 없다. 과연 집중해서 각 사업을 추진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지경이다. 사업수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대부분을 협회나 학교와의 협업으로 진행하고, 그러다 보니 형식적인 실적 만들기와 용두사미에 그친다.
시대에 맞지 않는 ‘진흥’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아직도 80년대 마냥 술에 물 탄 것 같은 디자인 지원정책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비슷한 사정인 곳이 또 있다. 바로 ‘한국인터넷진흥원’이다. 기관명을 듣자마자 ‘2010년대에 왜 인터넷을 진흥하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디자인을 진흥’하는 것도 내게 ‘인터넷을 진흥’하는 것처럼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진흥’의 사전적 정의는 ‘떨치어 일으킴’이다. 사회 전반에 올바른 인식이 부족한 분야를 제대로 알리고 증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디자인포장센터’로 출범한 뒤 2001년 지금의 기관명으로 변경한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어쩌면 지금도 ‘진흥’이라는 단어에 속박된 것이 아닐까.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일에 아직도 목메고 있는 셈이다. 기관명부터 디자인을 진흥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니 모든 사업을 그 틀에 끼워 맞춰 진행한다. 디자인 업계의 구조적 문제는 곪아 가는데, 여기 저기 페인트칠로 덧대면서 겉모양만 새롭게 만들어 진흥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한국 디자인 업계의 현실을 돌아보자. (대학교와 사설 학원 등으로) 공급과잉인 디자이너들, 우후죽순 생겨난 디자인 협회들, 그리고 숫자는 많지만 영세한 대부분의 디자인 기업들까지. 이제 디자인은 진흥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과도한 진흥이 독이 됐다. 일정 수준 궤도에 올랐다 싶으면 진로를 수정해야 하는데 전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내부의 그 누구도 디자인계의 가장 큰 문제인 디자이너 공급과잉에 대해 논하지 않고 있으니, 공기업 특유의 ‘철밥통’ 기질이 여실히 드러난다.


현실에서 디자이너들이 느끼는 ‘을’로서의 패배감과 저임금으로 인한 직업적 절망감, 디자인 기업 경영가들의 불안감, 디자인 스타트업 시장 황폐화나 글로벌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체의 횡포와 같은 디자인 산업이 직면한 급박하고 절실한 문제에 대한 해결과 지원에 무심하다. 반면 종사자가 봤을 때 아무 의미도 없는 ‘디자인 협회’나 ‘디자인 전문 회사’ 같은 시대착오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방의 디자인진흥원은 ‘조용히 자리나 지켜서 정년을 채우자’는 심산인 책임자들이 지배하는 곳이다. 무사안일주의의 극치다. 디자인 분야에 대한 어떤 비전도, 의지도 없는 비전문 공무원이나 그 지역 유지 마냥 대접받고 산 대학 교수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한통속끼리 모여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사업과 성과만 들먹이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양산에 3천 평 부지에 ‘미래디자인융합센터’를 개관했다. 이름부터 정체가 모호한 ‘미래디자인융합센터’는 건설하는데 총 280억 원이 들었다. 이 건물의 목적이 “‘융합’을 통해 우리 산업의 ‘미래’를 제시하고, ‘K-Design’과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종합 연구, 지원하는 싱크탱크”라고 진흥원은 주장한다. 화려한 수식어는 모두 가져다 붙인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대부분의 디자인 업계가 몰려있는 서울에서 400km이상 떨어진 지방에 그 화려한 건물이 정말 필요한지, 또 그것이 하게 될 역할이 진정 무엇인지 묻고 싶다.
디자인진흥원은 언제나 정부 담당 부처의 관심 영역 밖이었고, 국민들도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누구 하나 이 지경이 된 디자인진흥원을 비판하지 않는 디자인계도 각성할 필요가 있다. ‘○○ 디자인 협회’라며 의미 없는 행사를 남발해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협회들도 전혀 다르지 않다.


이제 디자인진흥원의 변화를 위해 디자인진흥원이라는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그 후에는 디자인 업계의 각 분야가 스스로 할 일에 참견하는 사업부터 정리해야 한다. 또 디자이너 개인이 할 일에 디자인진흥원은 더 이상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자잘한 사업에 혈세와 인력을 낭비하는 것을 멈추고 디자인 업계 전반의 구조적인 개혁과 실질적 지원정책 개발, 그리고 관련법 제정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을 ‘한국디자인정책개발원’과 같은 구체적인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 ‘이름 하나 바꾼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부 부처 특성상, 기관명을 바꾸는 데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이 땅의 디자이너들이 점점 하류층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의 권익과 산업의 가치를 국가가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결국 사람들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밤새워 일하는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하는 초석이 돼야 한다.





“창조적 변화를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

tags 박희운 , 브릭스리퍼블릭 ,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 한국디자인진흥원 , 웹 디자인 , 미래디자인융합센터 , 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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