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 입력의 대가는 직관적이었다 그래픽 인 유얼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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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입력의 대가는 직관적이었다 그래픽 인 유얼 페이스

툴이 인터페이스를 만든다 “인간의 손은 노동 수단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결과다”. 컴퓨터 없는 시대를 살았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이 말귀는 21세기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니 놀라운 일이다. 키보드를, 마우스를, 터치스크린을 신체 일부처럼 여기는 우리에게 손은 ‘수단’이지만, 동시에 디스플레이로 이를 구현하는 손의 솜씨는 ‘결과’다. 인터페이스(Interface)는 그 수단과 결과의 사이에서 접점을 마련한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에서 키보드 텍스트로, 마우스 클릭으로, 스크린 터치로, 그리고 뇌의 명령으로 보낸 신호를 디스플레이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인터페이스 덕분이다. 이에 인터페이스가 변화하는 과정을 손과 같은 수단(툴)의 등장으로 추적하려 한다. 툴이 인터페이스를 만든다. 혹은 인터페이스가 툴을 바꾼다.

진행. 월간 w.e.b. 편집국

➊ CLI(Command-Line Interface)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너, 인터페이스 러브스토리
➋ GUI(Graphic User Interface) 마우스 입력의 대가는 직관적이었다, 그래픽 인 유얼 페이스
➌ 터치 UI(Touch UI) 수족을 버리고 얻은 무한한 자유, 터치 UI
➍ NUI(Natural User Interface) UI 없는 UI, PC 없는 디자인, NUI


초기의 컴퓨터 화면 속 입출력 기호는 텍스트(명령어)였다. 모니터 속에서 비치는 그 텍스트들은 우주의 별과 같았다. 그러다 글자들은 좀 더 직관적인 그래픽으로 바뀌었다. 이에 얼굴에 반사되는 디스플레이의 반사광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우리는 이를 GUI(Graphic User Interface)라고 부른다.

글. 서종원 기자 seo@websmedia.co.kr 
참고. <인터페이스 연대기- 인간, 디자인, 테크놀로지>, 박해천 저


그래픽으로 만든 세상 1984년 슈퍼볼 중계방송 광고 타임, 세계 최대 프라임 타임이라고 부르는 이 시간에 컴퓨터 인터페이스 환경을 뒤바꿔버리는 역사적인 광고가 등장한다.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애플이 만든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Macintosh)’의 광고가 바로 그것이었다. 광고는 당시 PC 시장은 선점한 IBM을 ‘빅브라더’로 묘사하며, 애플이 이를 깨부술 거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모티브로 한 이 영상을 본 대중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광고는 그저 광고였을 뿐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GUI였다. 매킨토시로 구현한 GUI가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시대를 알렸기 때문이다.

GUI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 User Interface)를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해 사용자가 컴퓨터에 어떤 행위를 명령할 때 텍스트 대신 모니터에 띄워진 그래픽으로 이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전 CLI(Command-Line Interface) 중심의 DOS와 같은 OS는 텍스트 기반의 명령어를 입력해 컴퓨터와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지만, GUI는 마우스, 키보드(특히, 마우스)와 같은 입력 도구로 WYSWYG(What You See, What You Get), 즉 입력하는 대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아이콘을 클릭하고, 웹 브라우저를 열어 정보를 탐색하는 것과 함께 스크롤 바, 메뉴 팝업, 복수 윈도우 창을 이용하는 것은 모두 GUI의 덕인 셈이다. 우리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윈도우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사용자 친화적인 GUI를 자유자재로 실행하기 위해선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게 있다. 바로 마우스다. 그래픽 환경을 더 넓게 활용하려면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마우스 포인터로 원하는 것을 바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용하는 PC에서 키보드만을 사용한다고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마우스 없는 컴퓨터 앞에 우리는 무기 잃은 소총수처럼 무력할 뿐이지 않나.
마우스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는 인간과 컴퓨터 간 인터랙션의 새로운 우주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개인용 PC는 마우스 기반의 GUI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셈이니까.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작업 과정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또 다른 우주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1984년 슈퍼볼 광고 타임에 나온 애플 매킨토시 광고의 한 장면.
스크린에 등장한 ‘빅브라더’는 당시 PC 시장을 장악한 IBM을 상징한다.




1984년 슈퍼볼 광고 타임에 나온 애플 매킨토시 광고 문구




DOS 인터페이스의 예. FreeDOS의 시작화면




최초의 GUI 기반 시스템으로 알려진 SAGE.앞쪽 병사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입력 장치인 라이트 건(Light Gun)이다.    





웰컴 투 그래픽 월드 GUI에서 마우스의 역할이 크지만, 그렇다고 마우스가 GUI 시대를 여는 선행 조건은 아니었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가 사용되기 시작한 건 1958년으로, 더글라스 앵겔바트(Douglas Engelbart)가 최초의 마우스 ‘디스플레이 장치를 위한 X-Y 위치 표시기’를 특허 등록하기 6년 전 일이었다. 처음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적용된 시스템으로 알려진 건 북미항공우주방어사령부(NORAD, North American Aerospace Defense Command)와 MIT 링컨 연구소에서 함께 추진한 반자동 지상환경(SAGE, 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 이하 SAGE) 프로젝트였다.

SAGE는 미국 전역에 배치된 23개의 레이더 기지들의 통합 네트워크로 아우르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개별 컴퓨터 사용 시 마우스가 아닌 빛을 인식하는 라이트 건(Light Gun)을 사용했다. 시스템의 목적은 적군의 폭격기를 레이더로 감지해 미리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중심에는 58,000개의 진공관을 내장한 300톤 무게의 IBM AN/FSQ-7 컴퓨터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기술 혁신은 세계 3차 대전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동력으로 삼았다. SAGE 시스템의 원리는 흔히 브라운관이라 일컫는 CRT(음극선관, Cathode-Ray Tube) 스크린에 그래픽을 띄워 피아를 식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스크린엔 레이더를 통해 포착된 아군의 항공기를 F, 미확인 비행체를 T로 표시해 담당 요원이 스크린 상의 T를 발견했을 시 라이트 건으로 이를 찍어 전체 시스템에 알리고 비상 체재로 돌입하는 식이었다. SAGE 시스템은 결국 폭격기로 대비할 수 없는 탄도 미사일의 등장으로 위력을 잃었지만, 1980년대까지 비밀리에 사용했다.

GUI의 빠른 도약은 1963년 22세의 대학원생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가 일궈낸다. 그는 MIT 링컨 연구소의 TX-2 컴퓨터를 활용해 ‘스캐치패드(Sketchpad)’를 고안한다. 스케치패드 개발이 가능했던 이유는 TX-2가 사용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CRT 스크린, 키보드, 라이트 펜, 스위치 조작 패널(명령어를 입력하는 장치) 같은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어서였다. 스케치패드는 사용법 또한 간단했다. 라이트 펜으로 스케치패드에 선을 그린 뒤 스위치 패널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고 라이트 펜의 입력 또한 부정확했지만, 스케치패드는 개발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최초의 그래픽 프로그램인 스케치패드는 회화, 사진,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각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동시에 캐드(CAD)와 같은 그래픽 툴의 효시가 되기 때문이다.





SAGE 시스템 중 IBM AN/FSQ-7의 모습




SAGE 시스템의 기지의 모습.
각 기지는 사진처럼 두꺼운 콘크리트에 만든 4층 건물의 모습이다.
IBM AN/FSQ-7 컴퓨터는 주로 2층에 놓인다.




스케치패드(Sketchpad)를 사용하고 있는 이반 서덜랜드




스케치패드에서 선을 그리는 모습 







더글라스 앵겔바트가 고안한 최초의 마우스(위),베나베 부시가 고안한 메멕스(Memex)(아래)
   
★메멕스
바네바 부시가 고안한 하이퍼텍스트(문서 간의 자유로운 이동)와 유사한 개념의 기계로, 기억 확장(Memory Extender)의 약자. 마이크로 필름 형태를 정보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해당 마이크로 필름을 불러와 정보를 획득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IT 인물열전 ‘더글라스 앵겔바트’, 이상우 IT동아 기자






마우스의 등장 마우스는 앞서 언급한 더글라스 앵겔바트의 의해 1964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다. 처녀 제품은 언제나 그렇듯 그의 마우스 또한 사각형 나무를 뒤집어 쓴 투박한, 부족한 게 더 많은 모양새였다. 앵겔바트와 그의 동료 빌 잉글리쉬(Bill English)가 만든 최초의 마우스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두 개의 수직 디스크(X, Y축)와 이에 상응하는 두 개의 전위차계(전기 회로에서 어떤 두 점 사이의 전위차나 기전력 따위를 정확하게 재는 데 쓰는 계기), 상자 상단에 위치한 버튼 하나로 구성됐다. 생김새만큼이나 직선적인 움직임을 선보인 당시의 마우스는 가로 세로로만 움직일 수 있어 사용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더글라스 앵겔바트가 마우스를 고안하게 된 계기는 SAGE 시스템과도 관련 있다. 이에 관여했던 바네바 부시(Vanneavar Bush)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바네바 부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As We May Think)>라는 기고문을 통해 기존 전쟁, 학살 등 파괴적인 일을 위해 쓰였던 과학을 평화를 위해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덧붙여, 자신이 고안한 ‘메멕스(Memex)★’가 이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메멕스는 현재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에 꼭 필요한 하이퍼텍스트 구조와 인터넷에 큰 영향을 줬고, 앵겔바트가 기존 텍스트 중심의 인터랙션에서 보다 직관화된 그래픽을 통한 상호 작용을 위해 마우스를 개발하는 동기를 줬다. 초기의 마우스는 앵겔바트와 잉글리시가 속한 스탠포드연구소(SRI, Stanford Research Institute)만이 내부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다자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NLS(oN Line System)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팔리기 시작한 마우스 더글라스는 1968년 열린 추계연합컴퓨터회의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마우스를 공개한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20년 후에 도래할 GUI 기반 컴퓨터 시대에서의 마우스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당시 컴퓨터는 보편화된 제품이 아니었던 데다 GUI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마우스와 마우스를 기반을 둔 GUI는 1973년에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PARC, Palo Alto Research Center)가 개발한 제록스 알토(Alto)와 스타(Star) 워크스테이션에 사용되면서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손을 거치면서 달음박질을 시작한다. 잡스는 일찍부터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과 함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폭발성을 감지해 애플(Apple Computer Inc.)을 설립하고, 1984년 MS-DOS보다 미려한 인터페이스를 자랑하는 GUI와 이를 제어할 마우스를 ‘매킨토시’에 탑재한다. 마우스와 호환돼 출시했지만, 지나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시장에서 외면당한 ‘리사(Lisa)’로 실패를 맛본 이듬해 일이었다. 매킨토시는 완성도 있는 GUI를 구현했지만,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앞서 나간 탓이었는지 IBM 컴퓨터에 구현한 MS-DOS가 선점한 시장에서 응용 소프트웨어 부재와 램 용량 한계로 소비자가에게 외면당한다. 이 계기로 애플 이사진에 경졍 부진 탓의 원인을 잡스에 돌려 회사에서 해고한다.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승승장구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픽 인터페이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DOS를 GUI 기반의 PC 운영체제인 ‘윈도우’로 업그레이드한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표절 의혹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함께 일하기도 했던 빌 게이츠에게 GUI의 아이디어를 베꼈다며 법정에 소송을 건다. 그러나 둘은 결국 제록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셈이니 사실 누가 누구를 나무랄 상황은 아니었다. 제록스 ‘알토’의 마우스와 GUI를 따라 한 건 스티브 잡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혼란스러운 법정 공방 중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로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GUI와 마우스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동료였던 잡스와 게이츠는 둘도 없는 원수가 된다.






매킨토시보다 1년 먼저(1983) 나온 리사의 GUI(위),
애플이 1984년 만든 매킨토시(Macintosh)의 GUI (아래)






초기 애플 컴퓨터의 마우스들. 위는 리사에, 아래는 매킨토시에 사용한 마우스다.






마우스와 GUI가 일군 것들 마우스 기반의 GUI 등장이 중요한 건 개인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다양한 곳에 영향을 미쳤다. 간단하게는 아이콘들이 컴퓨터 스크린을 채우기 시작하자 좀 더 사용자 친화적인 접근 방식을 고려하게 했다. 이는 현재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UX(User eXperience) 개념으로 발전한다. 현재 UX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부터 도시 디자인까지 적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좁은 컴퓨터 모니터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GUI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중첩 윈도우 창을 띄우는 기능과 하이퍼텍스트로 2차원적인 공간을 3차원으로 구현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 투시도법의 발견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다양한 그래픽 툴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시각화된 가상의 모델링을 구현할 수 있었다. 그 덕을 크게 본 건 디자인, 특히 건축 분야였다. 이전 종이, 자, 컴퍼스(Compass)를 이용해 직접 손으로 그리던 도면은 고스란히 컴퓨터로 옮겨와 더욱 간단하게 건축 설계를 할 수 있었다. 1980년부턴 아예 컴퓨터 지원 설계(CAD, Computer-Aided Design) 프로그램들이 줄지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건축가들은 직선뿐 아니라 더욱 섬세한 곡선의 조형물도 설계할 수 있었다. 한 예로 복잡한 곡선의 미가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도 CAD 프로그램의 일종인 카티아(Catia)로 완성된다. 이후 오토캐드(AutoCAD)와 같은 프로그램이 보편화하면서 그 활용 범위는 건축을 넘어서 더욱 많은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가상 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에 대한 것이다. 이 분야에선 마우스가 없이도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구현할 수 있다. 스케치패드를 고안한 이반 서덜랜드는 이미 50년 전 지금의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 VR의 오큘러스 리프트, 삼성전자의 기어VR과 같은 HMD(Head-Mounted Device)를 실험했다. 얼핏 보면 GUI와 관련 없을 것 같은 이 기술도 HCI 관점에선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 VR과 AR 또한 HMD와 인간의 그래픽 인터랙션으로 빗어내는 가상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반 서덜랜드는 인간과 컴퓨터 디스플레이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본격적으로 HMD를 개발하기 시작한 건 공군 시뮬레이션 프로젝트를 위해서였다. 이에 헬리콥터 뒷부분에 설치한 카메라의 영상을 조종사 접안 스크린에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장치를 개발했다. 상당한 무게를 자랑해 천장에 고정하지 않으면 목이 부러질 정도였지만, 가상 공간에 몰입할 수 있는 컴퓨터 기반을 마련한다.
이반 서덜랜드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 또한 3D 그래픽을 활용한 컴퓨팅 기술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에드윈 캣멀(Edwin Catmull)은 루카스 필름을 거쳐 픽사 애니메이션을 공동 창립해 <토이 스토리> 제작에 참여한다. 존 워녹(John Warnock)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툴을 개발한 어도비 시스템을 설립한다. 이 모든 건 GUI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는 모든 작업은 마우스와 GUI의 의해 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실리콘 밸리 전쟁(Pirates of Silicon Valley, 1999)>에서의 스티브 잡스(좌)와 빌 게이츠(우). 한 때 동료였던 둘은 제록스의 GUI를 커스터마이징(이라 쓰고 표절했다고 읽는다)하는 과정에서 법정 소송을 벌인다.




MS의 윈도우 2.0 인터페이스.
GUI의 상용화는 윈도우 2.0에서 시작한다.




이반 서덜랜드가 고안한 HMD.
육중한 무게 탓에 천장에 매달지 않으면 착용할 수 없었다.



tags 서종원 기자 , GUI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 마우스 , 오토캐드 , 오큘러스 리프트 , HMD , 이반 서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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