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는 16년 째 개편 중이다 차우진 웨이브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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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는 16년 째 개편 중이다 차우진 웨이브 전 편집장

“평론가 하면 망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음악평론가가 있다.
정작 본인은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계속 음악 평론하고 살면서. 차우진 웨이브 편집장 이야기다.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 보는 잡지로 ‘씨네21’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듯,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웨이브’다.
이미 잡지는 다 망하고 볼만한 웹진은 웨이브 하나 남은 것 때문이기도.
망할 듯 안 망하며 16년을 버텨온 ‘저력’의 웨이브가 웹사이트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단다.
개편 소식 핑계로 만난 그에게서 16년간 안 망하는 법을 물었다.

글. 이창민 기자 whale@websmedia.co.kr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활동을 굉장히 활발히 하는 글쟁이 중 한 명이었는데, 올해 초 갑자기 모든 온라인 활동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SNS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엄청나게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 뉴스를 링크하고 뉴스에 관해 설명하면 온종일 그 생각만 하고 사람들을 만나도 그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러다 문득 “그게 왜 중요하지? 난 왜 여기에 목매고 있지?”란 생각이 들더라. 또, 난 글 쓰는 사람인데 SNS에 글을 한 번 짧게 쓰고 나면 다시 제대로 쓰기 싫어지더라. 뭔가 다 이야기한 것 같아서. 그래서 다 그만뒀다.



오늘 인터뷰는 ‘음악 웹진 웨이브의 국내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16년간 살아남기’가 주제다. 
웨이브의 시작은 1995년 서울대학교 캠퍼스다. 신현준, 성기완(3호선 버터플라이의 그 성기완이 맞다), 이정엽, 양재형 등이 주축이 돼 ‘대중음악 연구 스터디’를 만들었다. 주로 한국에 없는 해외 서적을 번역하며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던 모임을 온라인 공간으로 확대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 나우누리 PC 통신으로 ‘얼트 바이러스’라는 동호회를 만들었고, 이 동호회 멤버들이 대중음악 연구서도 내고 여러 문화잡지에서 글을 쓰면서 ‘얼바 동인’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바 주축 사람들이 웨이브라는 웹진을 만들겠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게 1999년 8월, 두루넷, 케이블 인터넷, 메가패스 같은 초고속 인터넷이 막 깔리면서 ‘가입자 100만 명!’ 같은 카피가 TV에 막 나오고 할 때였다. 매거진 붐으로 음악 잡지를 해보고는 싶은데 돈이 없으니 웹으로 매거진을 운영하려고 했던 것이다. 실은 도메인 서버 구축에 돈이 듦에도 말이다. 이때도 난 웨이브 일원이 아니었다. 친한 선배가 웨이브 창간 멤버여서 관심 있던게 다다.





힘들게 만난 사람




웨이브 개편




무려 2011년까지 사용한 웨이브 웹사이트. 엔하위키미러에서 'weiv'를 검색하면 '불친절한 디자인'이라 나오는 이유가 있다.


그럼 차우진이 웨이브와 만난 건 언젠가? 
1999년, 씨네21에 ‘오즈’라는 만화 비평지가 생겼다며 음악필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서 지원했더니 덜컥 붙더라. 그래서 매달 음반 리뷰를 써야 하는데 난 음악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거의 감상문 수준의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웨이브 글을 많이 참고했고, 나중에는 아예 선배 핑계 삼아 웨이브 사무실에 찾아갔다. 그게 나와 웨이브의 첫 만남이다.
이때만 해도 웹진의 제작방식은 오프라인 잡지랑 거의 똑같았다. 웨이브는 한 달에 두 번씩 편집 회의를 했고, 글은 월 2회 업데이트했다. 원고 마감일, 교정교열 기간도 있었다. 그리고 원고는 발행일에 맞춰 HTML 코드를 짜서 한꺼번에 올렸다. 회의도 진지하게 이번 달에 나오는 신보를 쫙 읊고 “이 음반은 한 번 다뤄보면 좋을 텐데, 이건 누가 맡고 저건 누가 맡아라” “이런 새로운 장르가 유행하니까 그 계보를 쫙 정리하는 기획기사를 만들자” 이런 얘기를 했다. 스터디 그룹과 PC 통신 동호회 때처럼 스터디도 했고.


웨이브는 회사도, 돈 벌 수 있는 수단도 아니었는데 무슨 열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나?  놀랍게도 당시에 웨이브는 돈을 벌었다. 2000년대 초반은 ‘닷컴 버블’이 일던 시대다. 인터넷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이 막 생길 때, 야후, 라이코스, 다음, 네이버 같은 포털의 초창기 시절이다. 그런 포털을 운영하려면 인터넷에 충분히 많은 콘텐츠, 지속해서 콘텐츠를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 포털이 직접 만들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각지의 웹진과 콘텐츠 제휴 계약을 맺곤 했다. 웨이브는 ‘코리아뮤직넷’이라는 곳과 제휴했다. 계약을 맺고 리뷰 한 건 당 몇만 원씩 원고료를 받는 구조였는데, 그때 우리가 한 달에 리뷰를 10~20개 정도 할 때였으니 그 돈만 해도 꽤 됐다.


2000년대 중반 과도기가 있었다. 
2004년쯤, 1기 선배들이 대학원을 졸업하거나 유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됐다. 2세대 주축멤버는 나, 최민우, 김태서 등 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선배들만큼 웨이브 활동을 열심히 하지 못했다. 각자 다른 직업이 있기도 했고 필진도 너무 없었다. 06~08년까지의 웨이브는 거의 글 업데이트가 없었고, 09~10년은 나랑 최민우 둘이 했다.
그런데 종종 웨이브로 “음악평론가가 되고 싶어요” “웨이브에 취직하고 싶어요” 같은 연락이 왔다. 난 이럴 때마다 우리가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 지, 웨이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 수많은 고민을 했다. 이후 후배들과 선배들에게 동의를 얻어 다시 웨이브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말하고는 직접 발로 뛰고 수소문하며 필진을 모집하고, 웹사이트 개편도 하고, 사업자도 냈다. 과도기를 거치고 나니 ‘사람들이 바뀌었으니 웨이브의 성격이 달라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라는 결론을 냈다. 절대로 예전 웨이브처럼 학술적인 내용의 리뷰를 할 수 없고 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음악 웹진이니까 그 외에 다른 것들에 주목했고 그게 음악 트렌드와 인터뷰 등이었다. 음악이 음반에서 싱글 형태로 바뀌고 있으니 그를 다룰 파트가 필요했고 그때 ‘위클리 웨이브’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케이팝의 비중을 높인 것도 이때다.


본격적으로 ‘차우진 웨이브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이 생겼을 때니 개인적인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맞다. 생각해보니 웨이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더라. 내가 글을 쓰고 먹고 살 수 있는 건 모두 웨이브 덕이다. 그렇게 웨이브가 10년, 15년의 역사를 가지게 됐다. 이 정도가 되니 내 맘대로 없애고 살리고 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고, 이왕 할 거 잘해서 살려보자고 생각했다. 그때 좋은 글을 쓰고 학술적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간의 유대관계를 잘 맺는 게 더 소중하다는 결론을 냈다. 유대관계가 끈끈하면 그때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기도 하더라. 그게 최근 2~3년이다. 이번 웨이브의 개편은 그러한 정체성의 강화, 혹은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네이버와 함께 ‘힘들게 만난 사람들’ ‘스.압.주.의’라는 기획 콘텐츠를 연재하기도 했다.  좀 색다른 방식으로 진행해보고 싶었다. 가장 핵심은 ‘긴 글’이다. 모바일 시대의 도래, 짧고 임팩트 있는 콘텐츠 어쩌구 해도 긴 글 읽는 사람은 스마트폰이든 태블릿이든 다 읽는다. 긴 글에 대한 니즈는 분명히 있다. 사람들이 긴 글을 읽지 않는 건 이미 있는 글은 다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콘셉트로 새로운 독자를 찾겠다는 시도를 한 게 위의 두 시리즈다. 인터뷰 대상도 완전 달랐다. 스타가 아니라 스타의 메이커들, 작곡가나 기획자를 만나는 거다. 크레용팝이 뜨면 크레용팝보다 그 그룹을 만든 사람이 훨씬 중요하지 않나. 


국내 최고의 포털 사이트와의 합작이었으니 ‘웨이브’라는 브랜드를 알릴 기회이기도 했을 텐데. 
네이버 연재 이후 독자 유입은 크게 늘지 않았다. 우리는 ‘24시간 홀드백’ 계약을 맺었다. 네이버에 올리고 하루 지나서 웨이브에 올리는 식이다. 처음에는 글이 길다는 불평 피드백이 많았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 ‘길지만 재밌다.’ ‘내용 좋다’는 평이 많이 달렸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호평을 해준 네이버의 독자들이 다른 콘텐츠를 보려고 웨이브까지 찾아올지를 관찰했다. 그런데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숫자나 웨이브 웹사이트 자체 트래픽은 네이버 연재 이전과 거의 변동 없었다. 네이버 독자는 네이버에서 끝나는 것이다. 네이버를 통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사용자 중에서도 가장 충성도가 낮고 수동적인 독자층이다. 이들을 웨이브로 끌고 올 수는 없더라.


그럼 앞으로는 무엇을 할 계획인가? 다른 매체와의 제휴? 아니면 또 다른 실험? 
나름대로 ‘독자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 웨이브의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숫자는 5,000명 정도다. 이게 딱 웨이브의 실질적인 독자다. 그럼 이 독자를 6,000명으로 늘릴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도 1차 콘텐츠를 만드는 ‘제조업’이 아니라 무언가를 비평하는 2차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기에 그건 힘들 것 같다. 게다가 웨이브의 독자들은 훈련돼있다. 그들은 어렵고 긴 글을 좋아한다. 그게 웨이브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 당연히 애니메이션 OST 리뷰, 영화 음악 리뷰 같은 건 안 본다. 최근에는 완전 다른 필드가 아닌 비슷한 필드의 조금 다른 시선, 촘촘히 연결된 또 다른 독자를 끌어올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실험이다. 웨이브는 실험을 계속한다. 그래서 웹사이트도 늘 개편 중, 늘 실험 중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또 다른 생각에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tags 이창민 기자 , 차우진 , 웨이브 , weiv , 음악 웹진 , 음악 평론 , 평론가 , 비평가 , 스압주의 , 힘만사 , 얼바 , 얼트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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