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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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를 그림으로

“이 아이디어가 정말 좋은데,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침을 튀겨가며 아이디어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휴우. 어떡하지? 정말 좋은 아이디언데. 이럴 때 그림이 좋은 수단이 된다.
그림을 이용하면 아이디어를 팔 확률이 높아진다.

정상수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광고대행사 오길비앤매더의 부사장으로 일했고, 20여 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해왔다.
그는 자신을 ‘대학에서 광고 크리에이티브 가르치는 아저씨’라고 소개한다. blog.naver.com/ogilvy3를 운영하고 있다.




  일단 미키마우스 얼굴부터

아이디어 정리는 대개 글로 한다.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도 기안서 쓰는 방법부터 배운다. 그런데 글을 잘 쓰려고 하면 좀 엄숙해진다. 글쓰기에 대해서 지금까지 배운 모든 방법과 기술을 동원한다. 하지만 상사를 감동시키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그림의 힘을 빌어보자. 헉, 그림이라고? 그림이라면 지레 겁먹는 이들이 주위에 꽤 많다. 그림 잘 그리기 역시 쉽지 않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있다. 연습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손에 연필을 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필을 쥐고 종이에 그림을 그린 게 언제쯤인가? 우리는 모두 바쁘다.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나 화가, 디자이너 빼고는 그림을 그릴 여유가 없다. 편리한 컴퓨터 때문에 손에 연필을 쥘 이유도 없다. 대학 강의실에 연필 없이 그냥 들어가는 학생도 많다. 중요한 내용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면 되니까. 강의 내용을 녹음하면 되니까. 그림을 그리는 전문가들도 요즘은 컴퓨터를 즐겨 사용하는 실정이다. 채색, 편집, 합성이 쉬우니까 웬만하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 연필은 대표적인 구시대 유물이다.

그런데 아이디어를 설명할 때는 종이에 연필로 그리는 게 좋다. 모두 컴퓨터로 할 때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 차별화되고, 눈에 띈다. 일단 연필을 하나 사고 연습장을 한 권 산다. 연필은 4B 연필로 사고, 연습장은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산다. 칸이 없는 빈 종이로 된 것이 좋겠다. 그리고는 그리는 것이다. 그것도 귀찮으면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이면지를 활용해도 좋다. 연필 대신 볼펜으로 그려도 좋다. 주위를 둘러보면 옛날에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는 친구도 꽤 많다. 미술학원에 잠깐이라도 다니거나 그림 잘 그리는 이에게 개인지도를 받은 이들도 있다. 아니라면 중학교 미술 시간에 사과라도 그려봤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어도 좋다. 오늘 연습하면 된다. 우리가 모두 직업적인 화가가 될 것이 아니다. 내 아이디어를 간단하게 스케치해서 보여줄 정도만 연습하면 된다. 점심시간에 책방에 한번 나가 보자. 그림을 정말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이 많이 나와 있다. 예를 들어 <스케치 쉽게 하기>, <일상이 즐거워지는 일러스트 그리기> 같은 제목의 책들이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이란 제목이 붙은 책을 보면 더욱 자신이 생긴다. 거기서 하라는 대로 하면 그림 그리기가 무척 쉽다.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고 눈, 코, 입을 점으로 그리는 것이다. 동그라미는 누구나 그리니까 정말 쉽게 배울 수 있다. 3분 정도 투자하면 눈 감고도 그림을 그릴 자신이 생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이나 그림을 처음 배울 때 좀 딱딱하게 시작한다. 그렇게 쉽게 접근하면 금방 친숙해지는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무거나 그려 보는 것이 가장 좋다. 낙서하듯 그리는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려면 바이엘부터 시작한다. 지루하다. 쉽지 않다. 그것이 정석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피아노 뚜껑 열고 아무 건반이나 두들기다 보면 피아노에 취미가 없어도 금방 친숙해지는데. 아그리파 석고상 그리는 방법을 배우는 대신 미키마우스를 그려보자. 일단 그리기 쉬운 미키마우스의 얼굴을 그려보자. 동그라미 세 개면 충분하다. 작은 동그라미 두 개는 귀, 큰 동그라미 하나는 얼굴이다. <짱구는 못 말려>의 짱구를 한 번 그려보자. 뽀로로 같은 캐릭터도 그리기 쉽다. 시간은 없지만, 잠시 짬을 내어 한 번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을 조금만 투자하면 커다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남는 장사다. 마치 독서와 같다. 귀찮고 바빠도 독서에 조금 시간을 투자하면 정말 크게 돌아오니까. 피카소는 식당에서 식사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냅킨에다가도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중섭은 담배 은박지에도 걸작을 남겼다. 나라고 하지 못할 게 없다. 나는 종이 살 돈도 있는데.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가? 루브르 박물관 가면 명화 앞에 이젤을 세워놓고 하루 종일 열심히 그림 연습을 하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있다. 열심히 연습하면 나도 금방 잘 그릴 수가 있다!



대충 그려보자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는 또 다른 연습방법이 있다. 좋은 그림을 베끼는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하나 고른다. 루브르에 있는 명화여도 좋고, 만화 캐릭터여도 좋다. 그리고 그 위에 트레이싱지를 덮는다. 반투명이라 밑그림이 보이니까 윤곽을 따라 그 종이 위에 그리는 것이다. 이건 정말 식은 죽 먹기. 어릴 때 우리나라 지도 그려오라는 숙제할 때 그렇게 했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자꾸 베끼다 보면 어느 순간 트레이싱지 없이도 잘 그리게 된다.

또 미술대학 학생들이나 디자이너들이 즐겨 하는 방식이 있다. 그걸 배울 필요가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썸네일 스케치(thumbnail sketch)란 것을 한다. 썸네일은 엄지손톱이란 뜻이다. 지금 엄지손톱을 한 번 들여다보라. 그러니까 처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만한 크기로 그리는 것이다. 사방 일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사각형 안에 그리는 거니까 누구나 할 수 있다. 특별한 그림 교육을 받지 않아도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렇게 작게 그리는 이유가 있다.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면 재빨리 포착해야 하는 까닭이다. 세부 묘사하지 말고 대충 그리는 것이다. 너무 잘 그리려고 애쓰다 보면 아이디어가 날아가 버린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그렇게 수십 개, 수백 개를 빠른 속도로 그린다. 그리고는 나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 떠오르는 아이디어 몇 개를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할 수 없다. 적어도 하나의 과제에 백 개의 썸네일은 그려봐야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를 건질 수 있다. 참 좋은 연습 방법이다.



자체로 메시지가 되는 벽화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굳이 어려운 그림을 그려가며 아이디어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사진을 쓰면 되는데. 사진이 그림보다 사실적이고 색도 다채로우니까 더 실감이 날 것 같은데. 물론이다. 강력한 사진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진은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남이 찍은 사진으로는 내 아이디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사진을 빌려 쓰면 멋지기는 한데 아무래도 내 아이디어와 잘 맞지 않는다. 구차하게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건 자료 사진이라 아이디어와 딱 맞지는 않습니다만’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직접 그리는 게 훨씬 낫다. 모두가 컴퓨터 글꼴을 쓸 때 손 글씨를 쓰면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과 같다.

그림은 아이디어를 파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단 그림을 어느 정도 그릴 줄 알게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말로 길게 설명할 시간에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보여줘서 남들보다 빨리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림에 자신 없어 한다. 바로 그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서툴러도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 모두 바로 부러워한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슬라이드 준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프를 그리기 위해 도형 메뉴에서 기둥 하나 가져오고, 거기에 비주얼 효과 넣고, 그것도 모자라 3D 효과도 좀 넣고 하다 보면 밤을 꼬박 새우게 된다. 손 그림 한 장이면 되는데.

마인드맵을 그릴 때도 단어로만 하지 말고, 작고 간단한 그림과 섞어서 그리다 보면 아이디어가 훨씬 풍성해진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인포그래픽(Infographics)도 엄청난 정보를 한 장에 요약해서 인기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도 그림은 매우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그림 같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피라미드 내부의 벽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실크로드에서 만나는 중앙아시아의 그림들은 문자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림에 관심이 없더라도 갤러리에 한 번씩 가보자. 그림 그리기에 큰 도움이 된다. 삼청동과 인사동에는 작은 갤러리가 정말 많다. 예술의 전당, 과천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같은 데 가끔 가보면 좋다. 상설전시는 입장료가 싸다.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림 그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웹툰 작가들이라고 해서 모두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아니다. 오늘 짬을 좀 내서 4B연필 하나 사자.   부록. <창작면허 프로젝트>라는 책을 한 번 보시라.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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