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일평생 애플 '리사' 디자이너 빌 드레셀하우스

상세페이지

  • HOME > 인물 인터뷰

디자인 일평생 애플 '리사' 디자이너 빌 드레셀하우스

여러분이 매일 손에 쥐고 있는 마우스는 그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예전에 여러분이 쓰던 슬롯형 플로피디스크도 그의 것이다.
거의 최초의 개인용 GUI PC였던 ‘리사’를 애플에서 디자인했던 빌 드레셀하우스는, 지금도 철저한 디자인 라이프를 살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의 태동은 끝났고, 변형만이 가득한 한국에서 더 이상의 디자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디자인 라이프인 것인가.

글. 이종철 편집장 jude@websmedia.co.kr
사진. 서종원 기자 seo@websmedia.co.kr





#SEOUL #FIRST #FIRSTTIMEATKOREA #STANFORD
그가 한국에 처음 온 건 애플에서 근무하기 이전이다. 이전에 기계디자인을 전공한 빌 드레셀하우스는 스탠포드에서 산업디자인으로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가 한국에 온 연유는 인덕대학교 총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디자인’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인덕대에서는 최신 미국 디자인을 강의해줄 수 있는 이를 찾았는데, 요청을 받은 스탠포드 교수가 드레셀하우스를 추천했다. 빌은 우선 아내에게 이 문제를 상의했다.
아내 베키(Becky) 드레셀하우스는 1960년대, 목사인 아버지의 방북 활동을 이유로 이미 한국에 다녀와 좋은 인상을 받았고, 동시에 한국 아이를 입양하기를 원했다. 아내의 뜻을 받아들인 빌 교수는 1974~1975년 한국에서의 짧은 생활을 경험한다.




그는 애플 산업디자인팀(Apple Industry Design)의 초대 팀장이었다. 이전 애플II 디자이너인 제리 매넉은 팀장 개념은 아니었다고.
하르무트 에슬링거, 카즈오 가와사키, 조니 아이브, 마크 뉴슨 등 수많은 스타 디자이너들이 눈에 띈다. 
출처. 위키피디아

#APPLE #LISA #JOBS #MOUSE #PATENT #IDEO
미국으로 돌아간 드레셀하우스는 여러 디자인 오피스나 컨설팅 업체, HP 등에 근무했다. 그런데 애플의 새 컴퓨터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이전, 애플 II를 디자인했던 빌의 스탠포드 동기 애플 인하우스 디자이너 제리 매넉(Jerry Manock)이 리사(Lisa)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빌을 추천했다. 영화 ‘잡스’를 보면 리사 팀의 생활상이 잘 나타나는데, 스티브 잡스는 알려진 대로 고고하고, 소리를 지르고, 문서를 집어 던진다. 사실이었을까. “모두가 스티브 잡스와 만나길 꺼렸습니다(Scared).”

스티브 잡스는 항상 리사 팀원을 모아놓고, 어떤 공학적 계산 없이 원하는 걸 모두 말하곤 했다. 그는 애초에 불가능을 잘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가능성’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제품에 관해서 잡스는 늘 열정적이었고, 여린 사람이기도 했다. 리사에 어쩔 수 없이 팬(Fan)이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고 빌이 말하자, 문을 박차고 나간 스티브 잡스에게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스티브 잡스는 실제로 남의 의견을 묵살하지는 않았다. 당시 애플은 벤처 기업 수준의 회사였고, 316번째 직원인 빌을 포함해 총 50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건물 역시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빌이 사용하던 건물은 레스토랑을 개조한 것이었고, 빌은 그 안에서 작은 방을 할당받았다. 팀원들은 큰 사무실 아무 곳에나 앉아서 근무했고, 미팅을 잡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팀 내에서 늘 즉흥적인 건 스티브 잡스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리사 혹은 매킨토시 팀은 큰 공간 이곳저곳에 앉아 시시때때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빌은 늘 자신의 방에서 1:1로 회의를 진행했고, 전체 회의 같은 건 거의 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그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해야 할 정도였다.
주목받는 벤처기업이었던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는 구매를 위해 돈을 얼마를 써도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한다고 했다가 하지 않았던 일만큼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사내 유일한 목표는 ‘이루는 것(Make it Happen)’이었다.
당시 빌 드레셀하우스는 리사 프로젝트에서 외관(Styling)과 내부(Mechanical Design)를 모두 디자인했다. 스탠포드 디자인 대학원의 모토가 ‘하이브리드 디자인’이기 때문이며, 그 자신도 공학 및 산업디자인을 모두 전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플 II를 디자인한 제리 매넉과 마찬가지로, 애플 디자인 팀은 설계와 스타일링을 따로 하지 않는다. 이 흐름은 현재도 이어져 있다. 다른 회사도 영향을 받았지만 애플의 뉴 맥북 내부 디자인의 섬세한 구조(배터리를 최대한 여러 조각으로 나눠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사례)를 보면 여전히 애플은 다른 회사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멀리 가 있다.

리사의 디자인 특이점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본체의 한 부품처럼 본체 밑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원 버튼 하나마저 싫어했던 스티브 잡스의 강박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빌은 당시 키보드와 마우스를 디자인했는데, 이전의 직육면체형 마우스와 달리 뒷부분이 더 높은 비스듬한 형태로 설계돼 있다. 지금 여러분의 앞에 놓여있는 마우스를 집어보면 왜 그런 모양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사를 포함한 마우스 설계 전체는 아이디오(IDEO)에서 함께 했는데, 마우스 내부 설계는 애플의 일부 직원과 아이디오의 콘테스트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때 애플 직원은 예쁜 마우스를, 아이디오 직원은 직육면체 마우스를 갖고 와 내부 디자인이 채택됐는데, 아이디오는 갑자기 마우스와 커서를 ‘작동’시켰고, 결국 아이디오의 마우스가 채택됐다고 한다. ‘Make it Happen’.
이 마우스와 관련해서 스티브 잡스의 배타성이 돋보이는 일화가 있다. 아이디오의 어떤 누구도 마우스에 대한 특허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잡스는 극초기 멤버이자 친구인 대니얼 콧키(Daniel Kottke)에게 주식을 한 주도 주지 않기도 했다. 대니얼 콧키는 애플의 12번째 직원이다. (참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두 번째 직원이다. 첫 번째는 워즈니악)

그러나 빌은 리사의 외관 디자인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빌은 리사 인하우스 디자인팀 모두에게 특허를 분배했다. 또한, 리사의 플로피디스크 슬롯에 대한 디자인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여러분이 어릴 적 플로피디스크를 넣고 부팅 전 성급한 마음에 키보드부터 마구 두들기다 부모님께 혼나곤 했던 그 플로피디스크 슬롯이 빌의 특허였던 것이다. 리사는 퍼스널 컴퓨터로 출시됐지만 9,995달러, 현재로 치면 2,000만 원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시장에서는 실패했다. 시장에서 참패했다고 해도 리사가 실패작이라고 보긴 어렵다. 성경에서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든 것처럼, 애플을 되살린 1984년의 매킨토시에 리사의 DNA가 이식된다.

“매킨토시는 미니 리사입니다. 리사의 소재, 스타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각종 기판을 더 작고 단순한 상자에 집어넣은 것이 매킨토시죠. 리사는 너무 커서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만, 그 당시 애플이 할 수 있는 기술과 디자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빌 드레셀하우스는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리사의 설계와 스타일링에 대해서 조언하기도 했다. 리사 프로젝트가 끝나고 매킨토시 출시 이전인 1983년, 빌은 애플을 떠나 다시 제품 디자인과 컨설팅을 주로 했고, 1994~1998년 인포커스(Infocus)에서 근무하며 현재도 판매하는 프로젝터 LP 210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LP210은 ‘애플보다 먼저’ 금속 질감을 사용한 상용 제품이다. 이후 그는 드레셀하우스 그룹을 1999년 창업하고, 본업인 제품 디자인과 컨설팅, 설계자로 재직했다.




빌 교수와 아이디오가 제작한 초창기 애플 마우스 분해도.
원 버튼과 큰 볼이 특징이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리사 원형. 우측의 트위기(Twiggy) 플로피디스크
슬롯과 주변기기를 포함한 모든 특허를 그가 보유하고 있다.


#REBORN #ATKOREA #BACKTOKOREA #ROI
CEO로도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던 빌은 드레셀하우스 근무 도중 저서 ‘ROI(Return On Innovation)’을 발간했는데, 미국 내에서도 인기 도서로 발돋움한다. 2003년 ‘ROI’는 한국어로 번역됐고, 한국에서도 전공자들에게 인기 도서가 되며 여러 짧은 강연을 요청받아 한국에 여러 차례 다녀가게 됐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본 홍익대 대학원의 한 친구가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에 그를 추천했고, 2006~2007년 투병 중인 노모를 두고 갈 수 없어 고사하다 노모가 소천한 이후 2008년부터 올해까지 대학원에서 초빙 교수로 강연했다. 홍익대학교와 한 로스쿨에서 디자인 씽킹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일평생은 ‘디자인’과 ‘디자인 씽킹’, ‘디자인 혁신’ 등의 키워드로 정리 가능하다. 어떤 것을 봐도 디자인부터 생각한다. 그러나 ‘디자인’ 단어는 우리가 주로 떠올리는 비주얼이 아닌 원론으로서의 디자인에 가깝다. 그의 말대로라면, 비주얼 디자인은 조류를 타는 것이지만 ‘디자인 씽킹’은 모두에게 필요하고, 모두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디자인적 사고에 대해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의 세대도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OS, 리사는 최초의 개인용 GUI 컴퓨터였다.




나사, 팬, 비스듬한 설계 모두에 빌 교수의 애환이 녹아있는 리사.
이 분해 제품은 리사2에 해당한다.




리사는 심슨에도 나왔다. 출처. 엔가젯


당시 리사의 광고, 감성 광고는 그때부터였다. 서체가 특히 아름답다.







mini interview 드레셀하우스 부부


한국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Becky 문화적인 도시(Cultural City)기 때문이죠. 쉽게 전시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표 한장을 사려해도 오래 기다려야 하거든요. 교통편이 편리하기도 하고, 안전해요. 개인적으로는 60년대, 70년대에도 한국에 왔었는데 한국이나 서울이 발전하는 걸 지켜보다 보니 그만 애정이 생겨버렸어요.

서울은 몇 년 전부터 ‘Design Seoul’이라는 홍보문구를 내걸고 있는데요. 서울의 디자인은 어떤 느낌인가요. 제 생각엔 특이한 건물의 오브젝트 위주인 경향이 강한데요.
Bill 그게 장점이죠. 2008년 한국에 왔을 땐 건축이 영 별로였거든요. 전쟁 후 건물을 빨리 짓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 건데, 이건 뒤집어 생각해보면 장점이니까요. 최근엔 정말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홍대 정문 파사드는 정말 압도적이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건축법이 한국보다 엄격해서 그렇게 특이한 건물들을 지을 순 없어요.

한국은 한국인의 생각보다 더 디자인 강국이었군요. 외국인이자 서울시민의 입장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요?
Becky 60~70년대 한국의 한옥은 정말 아름다웠는데 돌아와 보니 다 사라졌더군요. 최근에는 한옥의 미를 다시 살리려고 노력하고, 구시청사를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듯 점차 좋아지는 것 같네요. 청계천도 매우 잘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Bill 처음엔 녹지가 부족했어요. 건물들밖에 없었죠. 그런데 지금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앞으로 굉장한 크기의 녹지가 조성됐거든요. 청계천도, 시청 인근도 마찬가지고요. 이웃(한국인)들이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점차 개선방안을 늘려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공 디자인 중에서 정말 나쁜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Bill 공공디자인이라기보다는 한국사람의 ‘성향’을 말하고 싶어요.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LG 냉장고를 사려고 했는데, 온통 꽃 데코 스티커가 붙어있더라고요. LG의 스테인리스 디자인은 굳이 꾸미거나 하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Becky 비슷한 이야긴데, 한국 디자이너들은 메탈 재질을 잘 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위에 붙어있는 스티커는 아무도 떼지 않죠.
Bill 아! 맞아요. 정육점에 붙어있는 큰 냉장고의 흰 시트지는 어느 정육점을 가도 붙어있죠. 우리가 본 건 모두 떼버렸어요(웃음).

그렇다면 한국 디자이너나 직접 가르치고 있는 예비 디자이너 학생들의 수준은 어떤가요.
Bill 정말 뛰어나죠(Great). 그런데 성공하기는 어려워요.

왜 그럴까요?
Bill 두 가지 이유때문이죠. 위계질서와 배타주의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근무할 때 아트센터에 가보면 김, 조 등 한국인 아티스트 작품들이 다른 국가 이상으로 뛰어나단 걸 느낀 바 있죠. 그런데 취직하고 나면 그게 잘 안 되죠. 최고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조직 최적화를 먼저 생각해요. 항상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보면 팀 프로젝트보다 개인 프로젝트가 훨씬 나은걸요. 한국 학생들은 팀을 짜고 나면 ‘누가 나이가 제일 많은가’로 팀장을 정하더군요. 자유가 창의력을 불러오는 겁니다.

배타주의는 어떤 걸 말하는 것인가요?
Bill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향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로 친절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낯선 사람에게는 배타적인 경향이 있죠.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건데 그런 마음으로 가능할까요? 디자인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공감능력(Have a great empathy)인데 말이죠. 한국 기업은 최근 소프트웨어 저작에서 미국 기업에 뒤처지고 있는데, 소프트웨어야말로 공감 능력이 가장 필요한 직군이죠.
Becky 배타주의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어요. 한옥 투어를 간 적이 있는데 집 안의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죠. 그런데 대문을 나서면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었어요.

외국에서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있다면요?
Bill 애플과 아이디오에선 디자인팀을 세팅할 때 비전공자를 뽑아요. 문화인류학자, 심리학자, 예술가 같은 사람들을요. 이들의 관점은 일반 디자이너보다 더 다양하고 공감능력도 강하죠. 조직보다는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더 중요해요.

한국 기업이 그런 문제를 잘 해결했던 사례는 없을까요?
Bill 이미 유명한 사례가 있죠. 기아자동차입니다. 아우디 출신 독일인 디자이너 영입 이후 기아자동차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차량 기업이 됐죠(It worked). 물론 그(피터 슈라이어)는 훌륭한 디자이너겠지만 실제로 모든 디자인을 하진 않아요. 단지 최고의 디자인을 가려낼 뿐이죠. K5의 디자인은 한국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것인데, 그의 자유로운 사고가 없었다면 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디자이너 중 가장 높은 사람의 것이 채택됐겠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술가나 전문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인은 어떻게 디자인적 사고를 할 수 있나요?
Bill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과 디자인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디자인적 사고는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해요.
Becky 오! 비슷한 예가 또 있네요. 쓰레기통이 부족해요. 길거리에 적정 구간마다 쓰레기통이 있다면 사람들은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이건 명백한 디자인 문제죠.
Bill 그런 것처럼 ‘타인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디자인적 사고의 모토죠. 로스쿨에서 내놓은 과제는 ‘길거리 가게들을 활성화하는 법’, ‘식당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 등인데 학생들은 훌륭히 수행해냈어요. 타인을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조사하고 적용해나가는 과정이 디자인 씽킹이고, 이건 모든 사람들이 직업이나 취미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죠.

그런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서 나온 한국의 좋은 디자인은 무엇이 있나요?
Becky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요. 인터넷 보급률이 첫 번째, 교통의 편리함이 두 번째예요. 교통은 외국인이 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안내도나 전광판 등이 잘 설계돼 있어요. 공항 설계나 공항 안내 역시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요.
Bill 한가지가 더 있어요. 라바(Larva)입니다.

애니메이션 라바요?
Bill 네. 그 짧은 동영상은 정말 최고예요. 재미도 있고 공감도 가고요. 듣자 하니 그들이 두 명으로 작게 시작했다던데, 위계질서도 없고 배타주의도 없었겠죠. 그래서 최고가 된 거 아닐까요?

작게 시작한 건 맞는데 의외네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두 분이 한국에 대한 애정이 한국인들보다도 많은 것 같아요. 올해 강연이 마지막이라던데,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Bill 한국에 계속 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강의를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만약 강의를 할 수 없다면 미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책을 써야겠죠.
Becky 빌! 안돼! 한국에서 영어학원에서라도 근무해요!

그럼 그 학원에서는 디자인 씽킹과 영어를 모두 배울 수 있겠네요.
제가 꼭 다니겠습니다. 그렇게 계속 서울시민으로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tags 이종철 편집장 , 마우스 , 애플 , 리사 , 디자인 라이프 , 스탠포드 , 산업디자인 , 스티브 잡스 , 한국 디자인 , 아이디오

저작권자 © 웹스미디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콘텐츠는 저작권법 제7조 규정된 단서조항을 제외한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입니다.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출처 없이 본 기사를 재편집해 올린 해당 미디어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절차(지적재산권법)에 따라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URL 복사 출력하기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관련기사


정기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