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번역가를 꿈꾸는 디자인 저널리스트, 전종현 디자인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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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번역가를 꿈꾸는 디자인 저널리스트, 전종현 디자인 전문 기자

사물번역가를 꿈꾸는 디자인 저널리스트? 전종현 디자인 전문 기자의 프로필이다.
디자인 저널리스트는 그럭저럭 이해하겠다만, 사물번역가라는 말은 영 생소하다.
그냥 멋을 낸 거라면 혼쭐이라도 내줄 요량으로 그를 만났다. 인터뷰 약속 때가 되자 밤을 새우고 비둘기 같은 모습의 그가 말을 건다.
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 서종원 기자 seo@websmedia.co.kr




월간 웹의 남자, 전종현

감사한 인터뷰이에게 혼쭐이라니 말이 심했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사족을 달자면 전종현 디자인 저널리스트(이하 전종현 기자)와의 인연은 2014년 월간 [W.E.B.]기획의원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디자인 자문을 위해 그를 모시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월간 <디자인> 기자를 그만둔 참이었고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 디자인 블로그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디자인 전문 기자로서의 경력은 길지 않았지만,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을 수석 입학해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경험과 디자인 전반에 대한 지식을 두루 겸비한 그였다. 현재는 디자인 전문 월간지 <CA 코리아> [CA 코리아]편집 위원으로 있으며, 한국타이포그라피협회 정회원과 월간 <디자인> 객원 기자로 활동하면서 월간 <w.e.b.>[W.E.B.]에 가끔 글을 쓰고 디자인에 대해 자문한다.
당시엔 예민한 사람이 그렇듯 날렵한 턱선을 자랑했지만, 세월의 무게를 진 듯 체격이 제법 불었다. “20kg 쪘어요”. 그는 말한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기획의원 자리에 젊은 디자인 기자로 선택한 이종철 편집장의 증언을 들어봤다. 체급 전환의 이유가 무게감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EM]“디자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이중 디자인 전반적으로 지식이 풍부한 전종현 기자가 월간 [W.E.B.]독자들에게도 영감과 지식을 불어넣어 주리라 믿었는데 실패했다”    
[/EM]- 이종철 월간 [W.E.B.]편집장

그렇다고 한다.





사물번역가와 디자인 저널리스트
진지한 농담을 걷어내고,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이를 위해 사물번역가와 디자인 저널리스트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는 스스로를 사물번역가를 꿈꾸는 디자인 저널리스트라고 소개하기 때문이다. 두 말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멋을 내가 위해 붙은 이름표는 아니었을 거다. 세상에 없는 직업인 만큼 그만큼 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어 그가 직접 쓴 글을 인용한다.


사물번역가
“‘대상’, ‘사물’을 뜻하는 오브젝트(Object)와 ‘번역가(Translator)’의 합성어다. 내 정체성의 군살을 제거하고 없애며 가장 순전한 뼈대만 남았을 때 사진기로 포착하듯 하나의 콘셉트로 구현한 결과다”
출처. www.huffingtonpost.kr/harry-jun/story_b_4972945.html


디자인 저널리스트
“내가 디자인 저널리스트라고 감히 말하고 다니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디자인 신(Scene)에는 저널리스트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므로 언론에게도 주된 취재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디자인계는 하나의 산업으로서 그 생태계가 이미 조성돼 있다. 이는 곧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전달해야 할 존재가 더더욱 절실하다는 의미다”
출처. brunch.co.kr/@harryjun/1



다소 모호한, 어쩌면 오만한 표현이지만, 그 말에선 그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묻어있다. 결국, 그가 원하는 건 많은 사람에게 ‘디자인계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존재’다. 처음 명함에 사물번역가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했지만, 사물번역가라는 건 자신의 최종 목표이지 지금의 나를 표현하기엔 거대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자신에게 붙인 거창한 이름들은 결국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의 끝을 향해 세운 것이다. “사물번역가라는 세상을 사물로 두고 보는 사람입니다. 인간도, 자연도, 인공물도 사물이니까. 그걸 보려면 어떤 하나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맞춤식으로 봐야 하죠.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볼 때 물건의 맥락성이 있는데요. 역사성이 어떤지, 그 당시에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평가받았는지, 어떤 시대정신에 의해서 생겨났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 집니다. 무엇보다 맥락이 중요한 것이죠.” 그가 설명을 덧댄다.

그에 말에 따르면 글 쓰는 행위는 결국 번역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번역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필자의 화법으로 바꿔주는 거다. 그럼 결국 사물보단 번역가라는 말이 중요해진다. 화자나 화법에 따라 번역이 오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것은 “읽는 그대로 번역하되 사물에 있는 뜻을 정확히 알고 맞춤식으로 번역한다. 다음으로 본래 사물의 뜻하는 바를 표현은 다르더라도 심상이나 목표, 콘셉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윤문한다”는 게 그것이다. 다만, 사물번역가가 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기에 잠시 보류했다고….

그 후 ‘사물번역가를 꿈꾸는 디자인 저널리스트’라고 살을 붙이되 무게 중심을 낮췄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디자인계에서 일어나는 단편적인 토픽뿐만 아니라 문제점을 짚어내며 이를 공론화하기도 한다. “졸업 후 그들이 들어간 첫 직장은 아마추어가 아니라 전문 디자이너로 변신하는 프로 매혈인의 세계다. 뽑은 피가 다시 채워지기도 전에 이미 주삿바늘을 준비하는 이곳은 창작과 생명력의 컬래버레이션이 최고의 덕목으로 추앙받는 매혈의 성지와도 같다”. 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서의 고단함을 다룬 ‘대한민국 디자이너 매혈기’의 한 조각이다.

그밖에도 글로벌 스타이자 건물주가 된 모 가수와 계약 문제로 명도소송을 벌이고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얘기나 대기업 계열사인 E 업체가 젊은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도용한 사례를 따 ‘디자인 약탈자’라는 일갈하기도 했다. 두 글은 모두 [CA 코리아]‘인사이트(Insight)’ 꼭지에 게재한 칼럼으로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블로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다양한 매체를 플랫폼 삼아 활용하고 있다고. 다 계산된 수인가. 그렇게 안 봤는데. 속는 셈 치고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서 ‘전종현’을 쳐보자.





수학, 과학을 망쳐 선택한 디자인
업계에 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그의 저널리스트 경력이 5년이 채 안 되는 건 흥미롭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지원했을 때만 해도 글이라고 쓴 건 과제가 전부였던, 고등학교 땐 한의사를 목표로 이과를 지원한 그였다. 미술대학으로 교차지원이 가능했던 건 당시 ‘다’군 입학 전형에선 실기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과학이랑 수학을 망쳤거든요. 호호”. 장래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수석 입학생에 한해 수여되는 2년 장학금을 타면서 적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가 그만 8학기를 몽땅 채워 버렸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자인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생각한 건 졸업 전시회 심사에서 떨어진 이후부터다. 자신의 손이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내는 ‘금손’이 아님을 탓하며 삶의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그에게 은사님은 디자인 리서치 수업을 소개해줬고 그때부터 6개월 동안 서울디자인재단에서 후원하는 DRS(Design Research School)에 참여하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KCTI)에서 RA로 일한 게 계기가 됐다. 글쓰기 또한 디자인과 예술의 영역처럼 천재만 인정받는 게 싫었던 그지만, 소식을 물어다 주는 디자인 전서구(통신에 이용하기 위해 훈련된 비둘기)가 되고자 마음을 바꿨다.



사물번역가로 가는 길
그후 2012년 5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디자인 기사를 쓰며 디자인 전문 기자가 되기로 전종현은 결심한다. 지금처럼 글을 쓰기까지 몇 번의 부침도 겪었다. 평소 사물이나 사건의 맥락을 최우선으로 치는 그에게 안중에도 없는 ‘디지털’ 디자인 담당은 고역이었다. 평소 느릿느릿한, 옛 멋에 취한 아날로그형 인간이 디지털을 담당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A부터 Z까지 알아야 하는 성격은 그를 무력함으로 내몰았고, 약까지 먹으며 새 지식을 탐했다. 패혈증이 생겨 긴급 입원을 하면서도 항생제 링겔을 꼽고 다른 환자가 자는 새벽에 원고를 쳤다. 어쨌든 견뎌냈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다. 지금은 전공인 시각 디자인 외에도 디지털 미디어, UX, 브랜딩, 제품, 라이프스타일, 패션, 가구, 건축까지 소화한다. 디자인밖에 모르는 바보.

기자로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물을 최대한 이해해서 이해한 만큼 써요. 저는 틀린 말을 했을 때 굉장히 괴로워하는 사람이거든요. 내가 거짓말을 잘 못 하는데 착해서 그런 게 아니고 어떤 사실에 대해 다르게 말했을 때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멘탈이 안돼서 그래요. 그리고 기자는 어떤 글을 썼을 때 신뢰감을 상실해서 언어의 받아들여지는 신뢰도가 낮아지면 다시 건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해한 만큼만 쓰려고 합니다. 호호.”
지금도 다양한 디자인 얘기를 들려주는 그. 이제는 사물번역가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 위해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디자인을 더 알고 싶어 올 가을부턴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이론을 공부하기로 했다. 인터뷰 중 그가 한 멋진 말을 다시 한 번 적으며 그의 길을 응원한다.

“디자인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글을 써요. 하지만 있는 사실을 좀 더 쉽게 전달할 사람도 역시 필요하죠. 있는 그대로 보되 그걸 내가 이해한 만큼 친절하게 오해하지 않도록 그대로 건네주는 글을 쓰려 합니다. 대학원에서 더 많이 배워야겠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물론, 글은 계속 쓸 겁니다. I Will Be Back!”.
멋지게 퇴장하는 그의 뒤통수에 소리쳤다. 그때도 월간 <w.e.b.>[W.E.B.]을 부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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