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물의 생애를 엿보다, 스탠리 큐브릭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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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의 생애를 엿보다, 스탠리 큐브릭 展

Stanley Kubrick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어느 한 거장의 회고전에서는 그의 생애를 얼만큼 보여줄 수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은 생전의 철학, 정신, 인생을 대변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스탠리 큐브릭 전은 20세기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떼놓고는 부를 수 없는, 수많은 걸작을 남긴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인생 전체를 조망하는 회고전이다.

글. 이윤정 기자  lyj@websmedia.co.kr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시계태엽 오렌지’, ‘롤리타’,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파르타쿠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작품이지만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붐비는 전시장이 입증하는 감독의 유명세를 보면 몰라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을 봐야만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전시라 오해하고 관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관람 전 그의 대표작을 보면 전시를 감상하는 흥미가 배가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사전에 그의 영화를 다 볼 여력이 안 된다면 그가 가진 디테일한 성향과 다양한 작품을 잇는 하나의 내러티브.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춰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감독의 탄생’, ‘큐브릭 오디세이’, ‘큐브릭의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주제로 구성한 이 전시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고, 많은 작품을 다뤘기 때문에 하나하나 꼼꼼히 본다면 현기증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큐브릭의 고집스러운 집요함과 디테일 스탠리 큐브릭 전은 그가 영화를 촬영했을 당시 썼던 카메라 렌즈부터 제작을 통해 남긴 연구 자료, 사진, 대본, 서신, 필름, 소품, 의상, 심지어 일정표까지 약 1,000여 점의 작품을 차례로 나열했다.
보통 회고전이라 하면 핵심적인 작품과 연관 있는 습작들을 시대별로 나열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전시는 스탠리 큐브릭이란 인물을 작정하고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의 흔적을 다 쓸어 모았다.   이렇게 세세한 그의 모든 흔적을 전시한 이유는 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대단한 이유는 유명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만이 아니다. 큐브릭은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에 고집스러울 만큼의 정성을 담아 그의 완벽주의적 면모를 드러냈다. 그의 여러 작품은 화려하고 뛰어난 영상미만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다. 그가 사소한 허점도 용납하지 않은 장인이었다는 사실은 ‘전쟁 장면에 투입된 엑스트라 배우들’에서 드러난다. 이는 영화 ‘스파르타쿠스’ 속 전쟁 장면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배우들에게 번호판을 주며 그들이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 멀리서 지시한 장면이다.
그렇게 디테일한 과정에서 탄생한 영화이니만큼 이 작품을 촬영할 때 쓰였던 의상, 소품 모두 빠짐없이 전시했다. 로마 제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노예 군단을 이끈 카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장면의 화려한 연출과 생동감 있는 전투 장면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힘으로 인정받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 미술, 의상, 그리고 남우조연상, 총 네 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감독으로서 영화 제작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해 생전 이 작품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큐브릭이 영화 제작에 대한 독립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큐브릭 오디세이’ 구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그의 영화 제작 사전 리서치, 각본, 스케치 등 영화제작에 쓰였던 모든 자료에서 짐작할 수 있다. 주제와 장르를 불문하고 그는 작품을 거듭할수록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이 구간에서는 작품 하나에 해당하는 촬영 현장 스냅 사진, 의상, 세트의 모양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지나치기 쉽지만, 이 흑백사진 속에는 생생한 현장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 뒷사람이 어서 가라고 눈치를 줄 때까지 꼼꼼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철학적 주제의 향연 그는 첫 장편 영화 연출을 1953년에 선보이고, 1999년 작고 전까지 총 열 세 편의 다양한 주제의 영화를 제작했다.
중요한 사실은 우주, 전쟁, 역사, 공포, 미래 사회, 인간 심리 등 방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의 작품세계는 일관성 있는 철학으로 하나의 내러티브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나약함은 스물여덟 살 때 영화 제작자 제임스 B. 해리스와 협업해 제작한 ‘킬링’에서부터 드러난다. 그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 각본을 만들지 않고 ‘라이오넬 화이트’가 쓴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필름 느와르 형식을 띠는 갱스터 영화로 강도단 내부에서 일어나는 배신을 토대로 한 영화다. 그의 대표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역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영화 중 하나로 많은 감독에게 영향을 줬다.
그는 이 영화에서 원시 인류가 등장하는 도입부에 ‘프론트 프로젝션’ 기법을 최초로 사용하기도 했다. 프론트 프로젝션(Front Projection) 기법은 스크린 앞에서 영사기로 사진이나 움직이는 화면을 영사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삼는 기술을 말한다.
오늘날 디지털 합성 기술이 이 효과를 대신하기도 한다. 영상과 특수효과 부문에서 뛰어난 제작을 선보여 명작으로 칭송 받는 만큼 전시도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특히 여기서는 촬영에 사용된 의상을 디자인한 스케치 작품들이 인상적인데, 스케치 옆에 옷의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소재를 오려 붙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손으로 만져볼 수는 없으니 괜히 궁금하다고 만지는 행위는 하지 말자. 영화마다 적용된 촬영기법, 영화에 얽힌 이야기, 그가 사용한 소품을 보는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조각을 맞춰가는 과정과도 같다. 스탠리 큐브릭의 집요한 영화 사랑을 빠짐없이 다루려고 시도한 이번 전시는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의 흔적을 통해 한 시대의 거장을 다시 살려냈다. 자신의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싶거나 위대한 예술가가 걸어온 길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 짜릿한 영감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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