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관리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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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관리할 수 없을까?

글. 정상수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facebook.com/sangsoo.chong

누구나 바쁜 시대다.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데, 왜 나만 늘 시간에 쫓기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다. 특히 주말에는 시간이 빨리 간다. 한 것도 없이 시간이 다 갔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아이디어는 내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월요일을 그냥 맞은 건 아닌가? 시간을 좀 더 잘 쓸 수는 없을까?


나도 처음부터 게으른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싶었을 뿐이다. 더 좋은 아이디어 내겠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마감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적절한 순간에 멈췄으면 마감을 지켰을 텐데. 그런데 미련이 남으니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나만 바쁜가? 내가 능력이 좀 떨어지나?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밀려드는 일로 몸과 마음이 터질 지경에 이르러 회사의 교육담당인 영국인 이언(Ian) 선배에게 물었다. “전문가들은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죠? 특별한 시간 관리 비법이 없을까요?” 대답은 단순했다. 시간 관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소방관처럼 일하지 말라는 것. 불 난 데마다 따라가서 불 끄려면 영원히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누가 내 일을 대신 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불을 보고서도 끄지 말라니, 그런 엉터리 대답이 어디 있어? 그럼 매일 15분 단위로 자기가 한 일을 기록해서 제출해야 하는 타임시트(time sheet)를 없애든지. 그런데 시간이 흘러 되새겨보니 그의 말이 맞다.

딜리버리와 퀄리티, 그 사이에서
누구나 바쁜 이유는 단순하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 쉬워진다. 할 일이 많을 때 열심히 하면 마감 시간 내에 그 일들을 다 처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 문제다. 그냥 일을 마친 것이다. 카피를 잘 뽑아내기로 유명한 카피라이터 선배가 있었다. 그는 늘 절묘한 카피를 써내 유명했다. 그런데 제 시간에 써 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광고주에게 제시할 시간이 지나자 초보 기획담당자는 거의 눈물을 터뜨릴 지경에 빠졌다. 그 순간 무심한 표정으로 툭 던지는 선배의 한 마디. “한 번 놓친 딜리버리(delivery)는 욕 한 번 먹고 끝나지만, 한 번 놓친 퀼리티(quality)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오호, 카피보다 그게 명문인데. 그렇다. 마감 시간은 지켜야 하지만 아이디어의 품질을 희생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하루 중 꼭 해야 하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자는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는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니까, 하나만 잘하고 다른 일들을 못 해내면 야단을 맞거나 비난받는 경우도 있다. 특히 광고회사에서는 나 좋으라고 한 주에 한 가지 일만 오지 않는다. 저글링 하듯 항상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한 번에 다 하지 못해서 비난받으나, 마감 내에 하느라 대충 해서 야단맞으나 똑같다. 그러니까 중요한 일 하나에만 승부를 걸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나도 생각지 못한 놀라운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일을 맡긴 사람은 모든 일이 다 중요하다고 한다. 중요한 일의 기준을 어떻게 결정하는 게 좋을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에 우선 집중을 하는 게 좋다. 여기에도 파레토의 법칙을 적용하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의 80%는 대개 그리 급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니까 20%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단순, 반복 업무나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좋을 일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도 된다. 특히 관리자나 경영자들은 시간이 더 없다. 아랫사람들이 보기에는 손님과 점심 약속이나 하고 자기들 감시나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때로 너무 중요해서 꼭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 일도 과감히 넘기는 게 좋다.
조직의 높은 자리에서 일하는 이들은 가끔 ‘임파워먼트(empowerment)’란 단어의 뜻을 한 번씩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파워를 넘기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권한을 위임하는 일이다. 좀 불안해도 과감하게 넘기는 게 좋다. 내가 뽑은 사람을 내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는가? 그 순간 슬그머니 고민이 생긴다. ‘혹시 부하 직원이 나보다 일을 더 잘하는 거 아니야?’, ‘믿고 맡겼더니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 아냐?’, ‘그렇게 키워줬더니 나중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등에 비수를 꽂는 건 아닐까?’ 그래도 넘길 수 있는 일은 넘기는 게 좋다. 그게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결국, 시간을 쪼개 쓰는 것만 시간 관리가 아니다. 효율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업무처리의 효율과 내 인생의 효율을 동시에 챙기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업무목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양식은 회사 업무와 개인 업무를 나누어 작성하는 것이다. 그건 철저히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업무목록은 업무를 놓치지 말고 하자고 만드는 거니까 작성은 해놓되,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는 게 좋다. 그중에서 꼭 힘주어 할 일에만 집중하자는 것이다. 창의적인 일에. 그런데 창의적인 일을 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미안하지만 작은 일들을 좀 미루어놓자는 이야기다. 물론 이 바쁜 세상에 창의적인 일이라고 무조건 오래 할 수만은 없다. 집중시간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보통 소설을 쓰는 일에는 5시간, 비소설을 쓰는 데는 3시간,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데는 7시간, 마케팅 기획서 쓰는 데는 3시간, 광고카피를 쓰는 데는 2시간 정도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차는 있지만, 브레인스토밍은 2시간, 연설은 30분이 한계라고 한다. 그런데 남의 돈 받으면서 아무리 창의적인 일이라도 하루 동안 그 정도의 집중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예술가와 직장인의 작품에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는 예술가가 좋은 아이디어를 낼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고 영감이 아무 때나 떠오르는 게 아니니까, 작가들도 직장인들처럼 하루에 8시간 이상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글을 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그래서 하루키 같은 작가도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마라톤을 즐긴다고 한다.

사무실 안 예술가
예술가나 작가는 아니지만, 예술가 수준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보자. 직장에서는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 금쪽같은 내 시간과 월급과 바꾸는 것이니까. 그래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집중할 방법은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마감 시간 때문에 탄생한 역사적인 아이디어가 많다. 안전핀도 마지막 순간에 생각해냈다고 한다. 미국의 월터 헌트(Walter Hunt)란 청년은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연인의 아버지는 결혼에 반대했다. 계속 결혼하겠다고 하자 그 아버지는 열흘 안에 1,000달러를 벌어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했다. 궁지에 몰린 월터는 손재주를 발휘해서 찔리지 않게 핀 끝에 뚜껑을 단 안전핀을 발명했다. 결혼에 성공했다. 궁즉통(窮則通)이다. 다만 그 아이디어는 리본가게 주인에게 넘어갔다. 특허를 1,000달러에 팔아버린 것이다. 안전핀 특허를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은 전 세계 시장을 독점하며 백만장자가 됐다(발명상식사전).
<인 타임(In Time)>이란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돈 대신 시간을 쓴다. 커피 한 잔에 4분, 버스요금에는 2시간을 지불하는 것이다. 팔에 디지털 시계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어서 물건을 살 때마다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이 아까워서 뛰어다니고, 부유한 사람들은 시간이 넘쳐나서 카드놀이 하면서 느릿느릿 살아간다. 또 잘 사는 사람들은 시간을 도난 당하지 않으려고 항상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 입고 다니는 옷도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퍼나 똑딱단추가 달린 옷을 주로 입고, 남아 있는 시간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 팔을 노출한다. 또 시간을 빼앗길까 봐 팔을 가리는 옷을 입기도 한다. 영화적 상상이지만, 그럴 때가 우리에게 이미 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일 못지않게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을 익히자는 것이다. 커피 값을 4분으로 내기 전에.
광고 일을 시작할 때쯤 처음 보고 감동한 일본광고가 있다. ‘1초의 말(一秒の言葉)’이란 제목의 <세이코(SEIKO)> 시계 광고다. 시간 생각을 하면 꼭 머리에 떠오른다. 사실 영상은 그냥 심심하다. 카피의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보조 역할이다. 그런데 카피는 시 한 편만큼 강력하다. 사실은 시다. 1985년에 일본의 광고 선배가 만든 광고가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쯤 되면 광고지만 예술이다. 요즘은 눈만 돌리면 시계가 있다. 패션 리더가 아니라면 시계를 따로 찰 필요 없다. 하지만 이전에는 ‘시간 잘 맞는 시계’가 중요한 콘셉트였다. 그렇다고 ‘1초의 오차도 없는 시계’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으므로 대단한 고수다. ‘맞아. 시간이 중요하지. 1초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 직장에서 일한다면 예술가 기분을 내보자. 사무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예술작품 같은 일을 해보자. 굳이 작품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보자.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술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아침에 회사 나가지 않아도 된다.



영화 <인 타임> 포스터

안전핀을 발명한 월터 헌트

tags 디아이매거진 , 디아이투데이 , ditoday , 정상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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