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함을 주는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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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함을 주는 아이디어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는 농담으로 나옵니다.
되도록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세요
(The best ideas come as jokes. Make your thinking as funny as possible).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글. 정상수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facebook.com/sangsoo.chong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도 괜찮다. 그런데 정말? 내 아이디어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 맞나? 점검해보자. 고전적인 아이디어 평가 기준은 역시 ROI. R은 ‘Relevance’. 그러니까 메시지와의 ‘연관성’이다. 아이디어는 괜찮은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연결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많은 광고 아이디어가 여기 해당한다. 유명 모델만 기억나고 브랜드는 기억나지 않는 광고도 많다. 광고는 칭찬받는데 구매와 연결이 되지 않아 혼난다. 다음은 ‘Originality’. ‘독창성’이다. 광고 세상에는 ‘어디서 본 것 같은’ 아이디어가 참 많다. 남의 것을 베껴서 그렇다. 물론 우리나라 광고만 그런 건 아니다. 국제광고제 수상작들도 베끼는 작품이 꽤 많다. 세계적인 심사위원들도 익숙한 아이디어에 호의를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걸 잘 이용하면 나한테는 이득, 브랜드에는 해악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원래 있던 걸 새로워 보이게 하는 것이 기술이다. 잘 베끼는 기술이 필요하다. I는 ‘Impact’. ‘충격’이다. 내 아이디어가 충격을 주는가? 얼굴 모르는 소비자에게 충격을 주기란 쉽지 않다. 물론 ‘어떻게 저런 걸 돈 들여 만들었지?’라는 충격을 주는 광고 아이디어는 많다. 그런 충격은 피하자. 우연히 한 번 봤는데 다시 한번 보고 싶어야 충격적 아이디어다. 아니면 ‘3초 후 광고 건너뛰기’ 대상이 되고 만다.

절충이 아닌 충격

그런데 이 세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아이디어가 있을까? 독창성(Originality)은 당연하니 넘어가자. 메시지와의 연관성(Relevance)을 높이면 충격(Impact)이 사라진다. 광고가 제품설명서가 되고 만다. 친절해서 좋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 제품 특징은 필요할 때 웹사이트 보면 되니까. 구매 후기 보면 되니까. 반대로 충격을 높이면 무슨 메시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연관성과 충격을 절묘하게 조절하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 내는 능력이다. 그럼 50:50으로 그 둘을 맞춰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되지 않을까? 그건 곤란하다. 그런 아이디어는 절충안이 돼버린다. 아이디어에서 ‘절충(Compromise)’은 실패다. 위험해도 확실하게 한쪽에 몰아줘야 강해진다. ‘연관성’과 ‘충격’ 중 한 가지 기준이라도 충족시키려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충격’을 권한다. 그래야 기억하고, 그래야 잠재 소비자 머릿속의 ‘고려대상 제품군(Evoked set)’에 들어간다. ‘과즙 메이크업을 위한 제품이 많은데 어떤 걸 골라야 하지?’하고 고민할 때 바로 기억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디어에 유쾌함 담기

그럼 충격을 줄 아이디어를 어떻게 내지? 한 마디로 ‘유쾌한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모든 면을 철저히 계산한 전략적인 아이디어는 필수다. 하지만 소비자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자동차 엔진이 MPI 방식인지 GDI 방식인지 알 필요가 없다. 운전만 하면 된다. 결국 모든 논의에도 불구하고 유쾌함을 주는 아이디어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래야 경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업적 메시지인 줄 알지만 마음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광고제 수상작들이 ‘유머(Humor)’를 필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피하기 때문에 수상하지 못한다. 광고시간이 아까워 제품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외면당한다. 국내 유명모델만 등장하니 외면당한다. 멋진 영상만 고집하니 외면당한다. 우리는 원래 고대부터 음주가무를 좋아하던 유쾌한 민족이다. 지금도 그렇다. 아이디어에 유쾌함을 담자. 철저한 준비는 왼쪽 두뇌의 몫이다. 소비자에게는 오른쪽 두뇌로 다가가야 마음을 열 수 있다. 마음을 즐겁게 해야 지갑을 열 수 있다.

유쾌한 아이디어 사례

① 어떤 청바지 회사는 쇼핑백을 재밌는 광고로 활용했다. ‘절대 낭비하지 마세요’라는 슬로건을 쇼핑백에 적어놓고, 재활용을 유도한 것. 쇼핑백에 달력, 책갈피, 보드게임 놀이판, 종이안경, 필통 같은 것을 인쇄해 놓았다. 그러니까 버리지 않았다. 종이인형 오리듯 가위로 그걸 오려서 다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유쾌함을 선사한 것이다. 아까우니까 한 번 쓴 쇼핑백 버리지 말고 다시 쓰라는 잔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 버리든 말든 그건 소비자의 몫이다.

② 물 낭비를 줄이는 포스터 아이디어도 있다. 사람들이 손을 씻을 때 보통 5ℓ의 물을 쓴다. 이에 브라질에서는 포스터를 30개의 물휴지로 만들었다. 그걸 하나씩 떼어 손을 씻으라는 거다. 포스터 한 장 당 150ℓ의 물을 절약하는 셈.

③ 자기 제품을 재활용해서 성공한 아이디어가 또 있다. 캐나다 낙농협회는 우유 팩 잠망경을 만들었다. 다 마신 긴 우유팩 아랫 부분에 창을 뚫어 거울을 달아 잠망경을 만든 것이다. 야외공연장에 가면 의자가 따로 없고 관객들이 모두 서서 공연을 보는데 앞사람 때문에 무대가 잘 안 보인다는 데 착안했다.

④ 캐나다 신용상담 협회는 명함을 신용카드로 만들었다. 실제 카드가 아니라 가위로 반 자른 신용카드 모양으로 명함을 디자인한 것이다. 명함 받으면 무슨 단체에서 일하는지 금방 알게 된다. 처음 만나는 상대는 어색한데 바로 대화의 소재를 제공받으니 유쾌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⑤ 거리에 나가면 상점 앞에 영어 A자 모양으로 세워놓는 간판이 있다. 근데 어느 상점 앞에는 널빤지를 그냥 반으로 꺾어 접어서 세워놓았다. 톱으로 말끔하게 자르지 않아 나뭇결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바로 태권도장 간판이다. 마치 격파로 간판을 제작한 느낌을 줘서 마음을 열게 한 아이디어다.

⑥ 브라질에서는 자동차로 입간판을 만들었다. 어느 상점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옆으로 넘어져 있다. 가까이 가 보면 상점 진열대에서 선풍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터보 선풍기 파는 가게다. 바람이 너무 세서 자동차를 뒤집었다!

⑦ 자전거 도로 위에는 보통 자전거 그림을 그려놓는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어느 자전거 램프 회사에서는 불 모양의 야광 스티커를 그 자전거 그림에 붙여 놨다. 그러니까 밤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바닥을 보면 자전거에서 불빛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물론 브랜드 이름을 야광 스티커에 적어놨다.

⑧ 중국 디자이너 리 잔웬(Li Zanwen)은 비행기나 고속버스의 멀미하는 승객을 위한 ‘구토봉투’에 아이디어를 더했다. 지금까지의 봉투는 그냥 납작하게 접은 종이봉투 형태다. 그는 기존 봉투에 덮개를 만들고 그 덮개에 일회용 티슈를 넣어뒀다. 봉투는 찾았는데 휴지가 없어 당황할 때 유용하다.

⑨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을 위한 스도쿠 휴지도 나왔다.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에 치매도 예방할 겸 휴지에 인쇄된 스도쿠 문제를 푸는 것.

⑩ 은행 대기번호표 뒷면에 짧은 소설을 인쇄해 놓아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읽게 한 아이디어도 있다. 물론 콩트처럼 짧은 이야기만 담을 수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번호표를 뽑을 손님이 생길 수도 있다.

⑪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에서는 쓰레기 비닐봉지를 초록색으로 만들었다. 잔디 그림도 그려 넣었다. 그러니까 집 앞에 묶어 내놓아도 멀리서 보면 화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물론 길거리 상점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⑫ 이런 아이디어는 옛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먼저 냈다. 1953년 겨울, 주한미군으로부터 부산 유엔군 묘지의 잔디 공사를 맡았다.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인과 유엔(UN) 사절단이 참배할 부산 유엔군 묘지 언덕을 푸른 잔디로 깔아달라는 주문이었다. 참배일이 겨우 닷새밖에 남지 않아 고심하다가 어린 시절 본 청보리밭을 떠올렸다. 트럭 30대를 동원해 농촌으로 달려가 파랗게 싹을 틔운 청보리 포기들을 떠다 묘지에 심었다. 한겨울 황량하던 묘지 언덕이 청보리가 싹트면서 푸른 잔디로 변해갔다. 미군 관계자들은 앞으로 미군의 건설 공사를 정주영의 현대건설에 맡기겠다고 약조했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유쾌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기준 ROI 중 ‘I’만 기억하면 된다. Impact, 충격을 주어야 내 이야기를 기억한다. 내가 런던 시내 한복판에서 폭발물 테러범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이라 생각해보자. 현행범을 검거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횟감 자르는 칼을 내 코앞에서 휘두르며 저항하는 상대에게 점잖은 목소리로 미란다 원칙을 읊고 있으려는가? 테이저건을 쏘아 제압하는 게 낫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건 전략에서 벗어나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슬쩍 무시하라. 결국 전략이란 것도 충격을 주고 내 이야기를 기억시키려는 목적 아닌가? 부드럽게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유쾌함’을 권한다.


<01>스도쿠 화장지


<02>청바지 브랜드 Lee의 쇼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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