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임시정부, 3·1 운동…맞습니까?” 펜타브리드의 역사 디자인 캠페인

상세페이지

  • HOME > 프로젝트 & 프로모션

“위안부, 임시정부, 3·1 운동…맞습니까?” 펜타브리드의 역사 디자인 캠페인


캠페인 명: 100년이 묻습니다  
캠페인 기획·제작·진행: 펜타브리드 
프로덕션: 아토믹콤파스 
집행기간: 2019년 2월 
URL: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20297

글. 전찬우 기자 jcw@ditoday.com
자료. 펜타브리드 제공
기사입력. 2019-02-28 10:21



▲ 100년이 묻습니다 캠페인 ‘위안부, 맞습니까?’ 편 영상 갈무리.

100년 전 봄,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했습니다.
이어진 피와 함성과 절규의 ‘대한독립만세.’
진달래보다 더 붉은 피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피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땅은 일본 발 밑에 있었기에
짐을 싸 상해로 건너가 정부를 설립했습니다. 
목숨 내걸고 태극기를 흔들고, 보듬고, 지켰습니다.
100년이 지나 오늘.
그러나 여전히 이상하고 불편한, 더는 미룰 수 없는 질문들이 남았습니다. 
이에 펜타브리드와 질문하는 국민이,
우리의 지난 100년이 묻습니다.



▲ ‘100년이 묻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하인즈 조(Heinz Cho) 펜타브리드 ECD

“100년을 디자인 해 보겠다고 선언한 광고회사가 있습니다.”

펜타브리드는 남들과 다른, 이상한(?) 소명감을 갖고 ‘지구를 살리는 펜타브리드의 크리에이티브(지살펜)’ 캠페인을 펼치며, 여성·장애인·이웃 주민·해외 아동·청년이 겪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디자인 해왔습니다. 설립 18년차가 된 올해, 임원들은 연초 회사의 100년을 내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100년후에도 ‘펜타브리더’라 불리게 될 우리 후배들에게 펜타브리드 창업의 아버지와 삼촌들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죠. 회사의 역사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나라 역사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혹 잘못 디자인된 역사는 없었을까?” 새로운 상징물을 통해 이전의 익숙함을 깨는 것이 우리 크리에이터들의 일이기에, 몇 가지 키워드를 발견하고는 새로운 디자인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광고를 하는 광고쟁이일 뿐 역사학자도, 정치가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저 몇 가지의 질문을 카카오 스토리펀딩이란 플랫폼에 던져 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 위안부 맞습니까?”

첫 키워드는 위안부입니다. 너무도 익숙하게 사용되는 ‘위안부’라는 단어에 이상함을 느끼게 됐고, 그래서 나눔의 집에 계시는 이옥선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우리의 질문에 맞다, 틀리다를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정치가도, 역사학자도 아닌 할머니뿐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열 다섯에 일본군에 노예처럼 끌려가 지금은 93세가 되신 할머니가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강제로 끌려갔는데 왜 위안부입니까?” 당시 끌려갔던 곳이 중국에 있는 위안소라는 이유만으로 위안부가 되었고, 그렇게 평생의 꼬리표처럼 달고 사신 겁니다. <나눔의 집> 포함, 여러 시설에서 살고 계시던 일본군성노예 생존 피해자 할머니들 중 살아계신 분은 이제 스무 분도 남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건강 등의 문제로 또렷히 본인 목소리 내실 수 있는 분은 세 분도 안 됩니다. 증언자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훗날 이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더라도, 누군가는 지금 이 증언을 계속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세상에 첫 번째 질문을 던지게 됐습니다. “위안부 맞습니까? 일본군성노예 아닙니까?”
 
“두 번째 질문. 임시정부 맞습니까?”

두 번째 키워드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독립을 선언한 1919년 3월 1일은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운 이래 가장 많은 피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뿌려진 날입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 부산, 대구, 목포 전국에서 태극기를 들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땅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있었고, 역사상 최초의 정부는 주권이 미칠 땅으로 중국 상해를 택했습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27년 동안 정부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임시’ 정부라고 부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국민이 있었고, 만세를 부른 피의 주권이 있었으며, 헌법 규정대로 주권이 미치는 땅이었는데 말입니다.
스태프들과 상해로 향했습니다. 개관 15분 전, 촬영을 하기 위해서 노크를 하자 한 중국인 여성이 나왔습니다. “촬영을 좀 하고 싶습니다.” “안돼요!” “상의를 하고 싶은데 관장님 안 계신가요?” “없어요!” 꽝하고 문은 닫혔고, 깔깔대는 여성분들의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 나왔습니다. 뭔가 이상했지만 우리의 초대 정부로 들어가기 위해서 개관 시간에 맞춰 냄새나고, 좁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것은 먼지가 쌓인 김구의 방, 안중근의 책상. 맞춤법이 다 틀린 제각각의 한글 표지판. 그런데 시골의 작은 박물관이라 해도 하나쯤 있기 마련인 기념품점은 볼 수 없었습니다. 다시 몰래 카메라를 꺼내 들자 아까 그 여성분이 와 제지를 하더니 공안을 부를 기세더군요. 우리 선조들이 세운 첫 정부에서 왜 사진 한장 조차 중국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던지게 된 두 번째 질문, “임시정부 맞습니까? 대한민국 초대정부 아닙니까?”

“세 번째 질문. 3·1 운동 맞습니까?”

세 번째 키워드 3·1 운동, 이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운동의 뜻을 풀면 ‘건강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 또는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활동’이죠. 3월 1일, 전국에서 독립을 외친 이후, 새로운 우리의 첫 정부가 형성됐는데 혁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혁명의 공통 규칙, 권력의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프랑스 운동이라 하지 않고 프랑스 혁명이라 합니다. 또 몇 해전 광화문에서 촛불을 켜고 정권 교체를 이뤄낸 자랑스러운 행진 역시 촛불운동이라 하지 않고, 촛불혁명이라 합니다. 나라를 잃고 일제 강점기 아래 고통스러웠던 우리 선조들이 1919년 그 해 3월 1일 전국에서 피를 흘렸고, 그로부터 약 한달 후인 4월 11일에 새로운 국가가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3·1 운동이라 하는 게 맞습니까? 3·1 대혁명 아닙니까?”

“네 번째 질문. 태극기는 안녕하십니까?”

이번 캠페인의 마지막 키워드는 태극기입니다. 오늘날 태극기는 어느 순간 분열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이번 100년이 묻습니다 캠페인은 또 다른 분열을 만들고자 함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다시 화합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태극기가 일부 사람들에게만 사용되고, 누군가로부터 불편한 물건 취급 받아서는 안됩니다.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세대와 세대가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아직까지 반성과 사과가 없는 저들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100년 전 3월 1일의 그날로부터 다시 100년이 되는 이번 3월 1일 정오, 우리 모두 태극기를 들고 그들을 찾아가 100년 전 듣지 못한 사과를 받아냅시다. 그곳이 서울이든, 광주 혹은 부산이든 세대와 이념 구분 없이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태극기를 흔드는 것이 제가 바라는 가장 완벽한 캠페인의 엔딩입니다.

“우리의 승전가, 빛에 빛 이어”

네 번째 질문을 던지고 나니 모두가 태극기를 흔들며 전진할 때, 함께 부를 노래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우리에겐 애국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캠페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는 우리나라 애국가 보다 승전가의 성격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프랑스 국가의 가사와 애국가 가사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죠. 물론 앞서 언급한 나라들이 우리나라보다 우수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애국가를 바꾸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고요. 그보다, 100년 전 치열하게 독립을 외치며 싸워 이겨낸 선조들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시의 승리를 기념할 승전가 한 곡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입니다. 해서 제가 가사를 쓰고, 13년 동안 희생하며 발달 장애인들을 가르친 음악가 고대인이 곡을 써 ‘빛에 빛 이어’라는 곡이 만들어졌습니다. 노래는 발달장애인 오호섭, 김주현과 일본군성노예 피해 여성을 상징하는 ‘성난소녀상’의 모델이 된 청소년 박혜린, 박하린 그리고 테너 이재욱과 여러 시민분들이 함께 불러 의미를 더했습니다. 

“100년의 질문은 계속되며, 글로벌로 확장됩니다.”

앞서 말했듯 이번 캠페인은 회사의 100년을 내다보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열여덟, 이제 겨우 사춘기를 벗어나고 있는 펜타브리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고민과 질문 역시 3월 1일이 지난다 해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펜타브리드의 직원으로서 자신 있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고민을 하고, 문제를 디자인하는 크리에이터 그룹은 저희가 유일하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하는 키워드를 꺼내 새로 디자인 하는 것이야 말로 지구를 살리는 펜타브리드의 크리에이티브라 할 수 있습니다.
100년이 묻습니다 캠페인은 올해 1년 동안 한 달에 하나씩 질문하며 계속됩니다. 미리 힌트를 드리자면 4월에 드릴 질문은 ‘4.3 사건, 맞습니까?’ 입니다. 또한 3월 1일부터 미국에 있는 ‘인디고고’라는 글로벌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로 플랫폼이 확대됩니다. 뉴욕타임즈, CNN 등에 기사로도 소개될 예정이며, 특히 이 캠페인은 칸느 광고제를 시작으로 클리오, 뉴욕광고제 등에 출품됩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 모르지만, 2년 전 세계의 이목을 끈 ‘Fearless girl’ 캠페인의 소녀보다 우리 캠페인의 상징인 성난소녀들이 결코 작거나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질문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 당하고 있는 모든이들의 승리를 외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세대의 펜타브리더들에게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기 위해, 저희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 ‘100년이 묻습니다’ 디자인 마스터, 박태희 펜타브리드 visionary / CEO & Founder

“성난소녀들”

두 주먹 움켜쥐고 울분을 가슴에 묻은 채 앉아있는 ‘소녀상’이 과연 당시에 괴롭고 힘들었던 할머님들의 마음 전부였을까요? 한 소녀가 겨우 15살 때 부터 일본군성노예로 살기 시작했고, 90세가 넘은 지금까지 보상은커녕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받지 못한 한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우리 엄마, 할머니들의 한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일까요? 디자이너인 저는 ‘부족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어린 소녀들의 진짜 마음과 목소리, 분노와 저항, 고함과 절규까지. 이 모든 것들이 담겨야만 소녀상은 일본군성노예라는 꼬리표를 달고 평생을 투쟁해 온, 소녀들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침묵으로 삼키고 앉은 기존의 소녀상 뒤에 분노하는, 고함치는, 절규하는 소녀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성난소녀들’을 디자인하게 된 이유입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 현재, 당시 소녀들과 같은 나이로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4명의 여학생들이 성난소녀들의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직업 연기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2019년의 소녀들은 100년 전 소녀들의 한을 금방 이해했고, 그 이해는 ‘앞으로도 참지 않을 분노’로 표현됐습니다. 서울 광화문 일본 대사관 앞을 비롯해, 우리나라 그리고 전 세계 여러 도시에 지금 이 시간에도 침묵하며 홀로 앉아있을 외로운 소녀상 곁에, 성난소녀들이 함께 세워질 수 있기를 성난 소녀상의 디자이너로서 소망합니다. 혼자는 너무 외로우니까요.


▲ 성난소녀들 4인 피규어

“불꽃나비”

할머님의 가슴 속 상징으로 있던 노랑나비는 희망과 평화의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겨우 15살, 16살에 일본군성노예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야만 했던 소녀들의 가슴 속에 과연, 희망과 평화만 있었을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을 소녀들의 분노와 저항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요?
평화와 희망의 노랑나비 속에 있는 분노하는, 고함치는, 절규하는 또 하나의 붉은나비. 이것이 소녀들의 진짜 심장 ‘불꽃나비’입니다. 불꽃나비는 평화와 희망의 상징인 노랑나비 안에 일본군성노예 피해자 생존자들이 품고있는 근본적 마음, 저항과 분노의 상징인 붉은나비를 중첩해 내면의 아픔, 정화, 재생을 표현했습니다. 또 아직도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계속해 싸워내 기어코 승리하고, 사슬이 풀리는 진정한 해방의 날을 향해 날아가는 ‘불꽃나비’로 디자인했습니다. 일본군성노예 피해 할머니들로부터 날개짓하며 출발한 성난소녀상과 불꽃나비는 할머니들을 기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소녀들의 싸움을 이제부터는 우리가 계속하겠다는 저항과 약속의 아이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피지배를 당했거나, 성적 학대와 유린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저항의 아이콘으로 상징화되길 바랍니다.  각자 삶의 현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계의 모든 여성의 인권을 상징하며 불꽃나비가 되어 날아오르길 바랍니다.
성난소녀들과 불꽃나비는 조각상을 포함, 피규어와 각종 캐릭터 상품으로 제작돼 현재 ‘카카오 100년이 묻습니다 스토리펀딩’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내외 쇼핑몰에서 구입하실 있습니다 많이 구매해 주시고, 공유해 주시고, 후원해 주십시오. 제작 원가를 제외한 모든 수익은 당연히 일본군성노예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이 함께 살고 계신 나눔의 집에 전달됩니다.


▲ 불꽃나비 심볼 금속뱃지

▼ Campaign Masters & Crews

‘100년이 묻습니다’ 캠페인

- 크리에이티브디렉터. 하인즈 조 
- 디자인. 박태희, 펜타브리드 
- 카피&국민청원. 정철, 정철카피 
- 영상 프로듀서. 림학진, 아토믹콤파스 
- 음악. 고대인(전)드림위드앙상블 지휘자 
- 뮤직 프로듀서. 정욱, 스타일웍스 
- 성난소녀상·불꽃나비 상징물 개발. 펜타브리드 크리에이티브 디비젼 
- 캠페인 기획·홍보·진행. 펜타브리드 플레이닝 디비젼
 
캠페인 주제곡 '빛에 빛 이어'

- 작사. 조현진
- 작곡. 고대인 
- 편곡. 김도균
- 노래. 오호섭, 김주현(발달 장애인), 박혜린, 박하린(소녀상 모델), 태너 이재욱 
- 연주. 서울 재즈 빅밴드

캠페인 자문

- 전우용(역사학자), 김경선(서울대학교), 김기석(청파교회), 최영일(시사평론가), Anthony Baber(Global Communicaion)

tags 펜타브리드 , 100년이묻습니다 , 아토믹콤파스 , 100주년

저작권자 © 웹스미디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콘텐츠는 저작권법 제7조 규정된 단서조항을 제외한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입니다.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출처 없이 본 기사를 재편집해 올린 해당 미디어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절차(지적재산권법)에 따라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URL 복사 출력하기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관련기사

최신뉴스
기업탐방
지구를 살리는 펜타브리드의 크리에이티브!
인물 인터뷰
크리에이티브를 말하다, 펜타브리드 김대진·성은용 팀리더
프로젝트 & 프로모션
“위안부, 임시정부, 3·1 운동…맞습니까?” 펜타브리드의 역사 디자인 캠페인
오늘의 뉴스
만세의 함성이 가득했던 용산역 기찻길서 유관순 헌정 사진전시회, 유관순열사의 오마주
오늘의 뉴스
유진저축은행, 디지털채널 개편

정기구독신청